적막한 하루 / 천영애
적막한 하루였습니다 주책없이 까치집 짓는 것에 참견하고 싶었습니다 위로만 올라가는 까치 불러 굴뚝 낮은 어디쯤 바람 피하기 좋은 어디쯤 집 지으라고 참견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색시 구해야 숭덩숭덩 알을 잘 낳는지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굴뚝 여기저기 헤매는 까치 보다가 바람의 일에도 참견하고 싶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은 조용조용하게 다닐 것 자리 찾지 못하는 까치집 흔들리지 않도록 조용조용 지나갈 것 길 내고 싶다면 좀 멀긴 하지만 돌아가라고 참견하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적막하여 내리는 눈에게도 말 걸고 싶었습니다 그대가 다녀온 길 고요하였는지 이 밤에 무슨 일로 적막한 도시 왔는지
적막한 하루였습니다 종일 뒤적이던 문자를 눈과 버무려 여기저기 던져 놓으면 말이 될까요 그 말에 적막의 냄새 묻어나는 건 아니겠지요 어쩌면 까치 말을 바람에게 전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들이 그 말 듣고 까치의 집만은 동그랗게 비워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는 기다린다』, 그루, 2015.
감상 – 적막은 고요하고 쓸쓸한 분위기나 그런 분위기 속에 생겨나는 외로운 감정을 일컫는 말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적막한 하루”엔 까치집과 까치가 등장한다. 큰 나무에 깃든 까치를 즐겨 그렸던 화가 장욱진의 그림이 우선 떠오르지만 시인의 스케치엔 나무 대신 굴뚝 위아래를 헤매는 까치가 그려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적막의 분위기에 이끌려서 그런지, 까치 때문에 그런지 시의 전체 분위기는 사람 사이 관계나 생활의 현장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까치는 나무꼭대기 대신 굴뚝 꼭대기에 집을 지었을까. 어렵게 지은 까치집이 바람에 부서지고 날려가는 사정도 짐작이 된다. 이를 통찰하는 시인의 눈길은 따스하다. 집을 지으며 가족을 건사하려는 까치의 수고를 귀하게 여겨 바람에게도 부디 모질게 하지 말라고 참견을 하고, 까치집을 냉골로 만드는 일이 없도록 눈도 앉을 데를 가려서 내리라고 참견을 하고 싶어 한다. 사실 참견해서 될 일이 아닌 만큼 실익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마음만은 인간적 아니 우주적이라 할 수 있다.
도심의 굴뚝에서 본 것이 시의 소재가 되었을지언정 적막 속에서 까치와 바람과 눈에 참견하고 싶어 하는 시인의 정서는 자연에 가깝다. 그래서 그랬을까 시인은 도심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인의 근황은 산문집 『지금, 여기에서 –곡란골 일기』(202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골생활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을 것 같으면, 책을 통해서 시인이 곡란골에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는지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시의 말미에서 보듯 자신의 글에 “적막의 냄새”가 묻어있는 걸 감지하고 또 그걸 바랐던 시인은 결국, 귀향을 선택한 것인데 그때의 심정을 산문집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우선 밤이 되면 천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캄캄해지는 곳, 더불어 완전한 적막이 대지 위로 내려앉는 곳, 집은 단출한 단층집이면 좋겠고, 기왕이면 나무로 지은 집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사람들의 내왕이 번잡하지 않도록 마을에서 살짝 떨어지면 좋을 것이고, 고요는 타인에 의해서 자주 깨어지지 않으면 더 좋은 것이다”고.
실제로 곡란골에 온 시인은 “적막하되 외롭지 않고, 고요하되 우울하지 않다. 사람으로부터 멀어져 있되 단절되지 않았고, 자연과 친하되 침잠하지는 않는 것이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천영애 시인은 계절 따라 변해가는 까치집 모습도 관찰하겠지만 마을 숲에서 누군가 봤다는 시라소니의 눈빛처럼 사납고 번쩍이는 글 한 편을 빚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모르는 것이 천지이지만 많은 것이 적막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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