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노둣돌 / 방순미

톰소여와허크 2024. 8. 3. 22:33

 

노둣돌 / 방순미

 

 

동짓날 지는 해 짧아지듯

어머니 다리가 그렇다

 

허리 굽어 오르기 힘든

방문 앞 디딤돌

 

돌도 세월엔 장사 없어

이젠 둘 다 뒤뚱거린다

 

-『물고기 화석, 우리시움, 2024.

 

감상- 하마석(下馬石)의 우리말인 노둣돌은 말에 오르거나 내릴 때에 발돋움하기 위하여 대문 앞에 놓은 큰 돌을 뜻한다. ‘노둣돌이란 단어가 익숙해진 건 문병란 시인이 쓰고 김원중 가수가 불렀던 노래의 영향이 커 보인다. 노래에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문병란, 직녀에게)란 시구가 나온다. 떨어져 있는 이쪽과 저쪽이 만나야 한다는 시 내용을 생각하면 노둣돌 대신 징검돌이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가슴에 얹히는 무게를 생각하며 노둣돌을 선택했을 것이다. 노둣돌이 원래의 용도를 잃고 다소 높이가 있는 마루나 문 앞에 디딤돌로 쓰이는 일도 흔히 있는 일이겠다.

문병란 직녀에게에서 노둣돌은 남녀 혹은 남북 만남의 디딤돌이었다면, 방순미 노둣돌의 노둣돌은 어머니를 안전하게 받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디딤돌이다. 하지만 무정세월은 어머니를 더 작게 더 약하게 만든다. 디딤돌도 영원하지 않아서 어머니와 같이 흔들리고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 시인은 물고기 화석에서 어머니가 생선 장사꾼이었다고 밝히며 그런 어머니가 나이와 병마로 인해 점점 물고기 화석이 되어간다고 안타까워한다.

동짓날 하짓날 번갈아가며 해는 짧아지고 길어지고 무한 반복 같아도 끝이 없다고는 말 못한다. 사람의 일생은 그야말로 순간적이겠다. 개인사가 하루하루 역사를 만드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역사는 평균 수명의 범위 안에 열렸다가 닫힌다. 그런 중에 부모와 자식은 개인사의 시작과 연장이 되는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방순미 시인의 노둣돌은 인연이 다하는 아뜩할 그날을 걱정하며 부르는 사모곡이다. 생전의 도리를 다하거나 못하거나 안 하거나 간에 저마다 가슴에 놓이는 노둣돌의 무게는 비슷할 것도 같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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