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오늘은 너의 애인이 되어줄게

톰소여와허크 2024. 9. 25. 22:59

오늘 펴고 있는 오늘은 너의 애인이 되어줄게의 표지 그림은 처음에는 구름인 줄 았았더니 오딜론 르동의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를 그린 또 다른 그림도 보인다.

 

최희정, 오늘은 너의 애인이 되어줄게, 구름의시간, 2024.

 

- 저자는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한다. 결혼과 함께 그만둔 일을 재취업 교육을 받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재취업 성공 사례 수기로 최우수상도 받았다. 글 쓰고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을 간직하고 살던 저자에겐 상당한 의미를 가진 상이었을 것이다. 생중계되었던 시상식 영상을 찾아서 수상의 기쁨을 어머니와 나누며 어머니에게 진 오랜 빚도 청산한다. 어머니에게 진 빚은 키워준 대가로 자발적으로 써준 차용증에 적힌 오천만 원이다. 그 빚은 내내 못 갚고 살다가 30년 더 지나서 본인이 받은 상으로 갈음한 것이다. 상금이 많은 거 같지 않지만 저자에게 그 상은 5천만 원의 가치가 있었고 어머니도 이에 흔쾌히 동의해준 것으로 보인다.

 

오늘은 너의 애인이 되어줄게는 저자가 겪은 이런 일상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에게 애인은 특정인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어머니도 되고, 딸도 되고, 아들도 된다. 직장의 동료도 되고 인생의 선후배도 된다, 힘들 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벗도 되고, 글 쓰는 삶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작가나 독자이기도 할 것 같다. 애인과의 관계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실망도 하고, 돌아서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한다. 직장 내 갈등 등 저자가 소개하는 인생의 어떤 장면은 비슷한 시기를 지나온 독자의 상황을 떠올리게 해줄 것도 같다. 이 과정에 저자는 이직 결심 등 선택을 고민하지만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 용기도 지녔다. 특히, 애인을 원망하는 마음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애인을 이해하며 언제든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 건 저자의 미덕이다.

 

자동차 운전을 하며 터널을 지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저자는 스스로 길을 나서서 이전의 부담을 줄이는가 하면, 수술실 경험과 애인의 태도로 마음의 병을 앓으며 여름에도 양말을 신고 다녔던 저자는 세 켤레 오천 원 정도 하는 양말을 건네는 또 다른 애인으로 인해 기운을 얻기도 한다.

다정한 말 한 마디가 폭신한 양말이 되어, 오랫동안 얼음 속에 묻혀 있던 마음의 발이 사르르 녹는다. 따뜻해진다. 그날 멍게와 술은 내가 샀다는 저자의 말을 통해 사는 데 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때로 오천 원이 오천만 원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게 인생의 이상한 셈법이 아닐까 하는.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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