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디트 페르뇽(성귀수 역), 『나의 형 빈센트 반 고흐』, 아트북스, 2007.
- 화가 중 고흐에 관한 책이 제일 많을 거 같다. 고흐를 이해하는 창으로 가장 첫 번째 도구는 그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다음으로 본인이 쓴 편지가 고흐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가장 유용한 창이겠다. 고흐의 사생활, 그림, 주고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지금껏 수많은 책들이 쓰이고 또 그걸 찾아 읽게 되는 것은 결국, 고흐와 고흐 예술의 힘이다.
고흐는 생전에 천 통을 훨씬 웃도는 편지를 썼고 그중에 삼분의 이는 동생 테오에게 쓴 것이다. 고흐가 죽고 난 뒤 동생 테오는 고흐 그림을 세상에 알리려고 분주했지만 병을 얻어 고흐처럼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고흐 뒤를 따른다. 고흐 사후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현재 테오는 오베르에 있는 고흐 묘 옆에 나란히 누워 있다. 이 소설책은 고흐 사후 6개월간 테오의 행적을 좇으며 고흐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 역할을 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도 테오가 그간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고흐를 추억하는 장면이 잦다. 짧게 인용된, 1876년의 편지 한 대목을 본다. “저녁때 그 아이들에게 종종 안데르센 동화를 들려주거든, 「어머니 이야기」라든가 「분홍신」, 「성냥팔이 소녀」 등등…….”이라고 썼다. 고흐가 영국에서 학교 보조교사로 있을 때 쓴 편지다. 저자는 고흐 내면의 불길이 시작된 시기를 짐작해보는 것이었지만 내겐 안데르센 동화 속에서 고흐가 선택한 이야기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독서광이기도 했던 고흐가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를 해준 건 이상할 건 없지만 언급한 동화의 인물들은 삶의 요소요소에서 죽음이나 큰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이전 행위를 보상받는 내용이기에 이후의 고흐 삶과 연결되는 면이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고흐와 갈등 관계에 있던 아버지가 죽자, 고흐는 <성서가 있는 정물>(1885)을 그린다. 화면을 채우는 성서 옆에 조그마한 책 『생의 기쁨』(에밀 졸라, 1884)이 귀퉁이에 나란히 놓여 있는 그림이다. 아버지 책장을 더듬던 테오는 그 그림을 떠올리며 당혹해하던 감정을 떠올린다. 단정하지만 틀에 갇힌 듯한 목회자 아버지의 삶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고흐의 삶이 두 권의 책이 상징해주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버지와 형의 대립과 갈등도 보이고, 화해의 손길 끝에 평화도 느껴지는 그림이라서 이 그림을 테오가 좋아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테오는 고흐의 죽음 이후, 자신의 생에서 ‘생의 기쁨’이 사라진 걸 느낀다. 아버지와 형의 갈등 속에 고흐 자신은 늘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는다고 했지만 형과 자신 사이에도 그런 긴장이 있었음을 테오는 생각하는 것이다.
고흐는 테오에게 생활비와 물감 값을 구하거나 거기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는 것으로 편지 말미를 마무리하곤 했다. 자신을 한없이 지지해오고 지지해줄 줄 알았던 동생 테오가 결혼과 육아 문제로 생활비 지원의 어려움을 얘기했을 때 고흐는 이전의 견고한 관계가 흔들리는 것에 대해 극히 두려워한 것으로 보인다.
테오는 임종 직전에 고흐의 자화상을 보며, 그 얼굴이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그때의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내게 남은 마지막 기력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마치 그림 속 색채들이 나의 혈관에서 푸른빛을, 내 볼에서 창백한 장밋빛을, 내 눈동자에서 초록빛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 같다. 내 목을 낚아채, 나를 앗아가는 것 같다. 내가 빈센트의 그림 모델이 되어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요구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한데 이제 와 그의 모습 안에서 흡사 거울을 바라보듯 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고흐가 유명세를 치른 것은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고흐 형제에게 긴장감을 심어주었었을지도 모를 테오의 아내 요한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고흐 그림과 편지가 잘 보관하여 편지를 책으로 출간하고 수차례 회고전을 주도하면서 고흐뿐만 아니라 테오까지 불멸의 별로 올려놓았으니. (이동훈)
* 그림은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 작인 <성서가 있는 정물>(1885)과 <자화상>(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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