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영화)

어쩔 수가 없다

톰소여와허크 2025. 12. 21. 12:32
<어쩔 수가 없다>(박찬욱, 2025)
몸은 내내 아픈데 약값 마련도 쉽지 않았던 권정생을 두고 이오덕이 도움을 주고도 도움이 부족하다며 자책까지 하니, 권정생은 너무 애쓰지 마시라는 말에 이어, ‘가난한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라는 답신을 보낸다.
병원비, 약값 등 지출해야 할 고정 비용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자가 치료로 돌릴 수 있는 부분은 그렇게 하고 다른 소비도 최소화하면서 실제 권정생은 가난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사신 듯하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 대한 감상을 꺼내면서 권정생의 가난을 얘기하는 것은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돈과 관련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내, 아들, 딸 그리고 개 두 마리까지 건사해야 하는 영화 속 만수와 단출한 권정생을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돈에 대한 태도 자체는 빈부와 무관할 성싶다. 사실, 권정생도 자신이 쓰지 않았을 뿐이지 통장에 12억원의 예금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영화는 해고 노동자인 만수가 가계를 위해 재취업에 방해되는 사람들을 해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는 내용이다. 만수는 이후에도 내친김에 또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 이전의 선택을 이어간다. 지금 누리는 것을 내려놓기 싫고,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키고 싶은 건 가족 모두의 바람이지만 이것으로 만수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나마 자폐성 장애를 가진 딸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방책인 고액의 첼로 레슨을 포기할 수 없다는 설정이 안타까움을 준다. 그렇다 하더라도 극단적이고 무모한 설정이 이해되는 건 아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밀고 나간 데서 역설적으로 감독의 의도가 이해되는 면도 있다. 돈이 없으면 생활의 많은 것이 무너지는 자본주의 질서하에 해고와 실업에 대한 두려움과 실제 닥치는 고통을 극화해내면서 지금의 삶이 이렇게까지 오고 있지 않느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프게 묻는 목소리가 영화 엔딩 후에도 길게 여운으로 남는다.
돈의 위세가 세질수록, 돈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수록 그 미망에서 벗어나는 길도 단순해 보인다. 돈보다 중요한 것을 100가지 이상 외거나, 돈을 하찮게 여기는 이가 인생 상수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권정생 같은 이는 다같이 가난하면 된다고 할 것 같고, 권정생의 친구 전우익 같은 이는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미냐고 거들 것도 같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 대한 평이 엇갈리지만 내겐 <헤어질 결심>(2022)만큼이나 재미난 작품이다. 영화 포스터의 나무는 배롱나무다. 손으로 가지를 긁으면 잎을 흔들며 키득거리기에 일명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다. 그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만, <헤어질 결심>에선 안 웃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에선 몇 번 웃기도 했고.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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