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스 감독, 2024)
주변이 늘 평화롭기를 빌지만 세상일은 그렇지 않고, 당신과 나도 평화롭지 않을 때가 많은 줄 안다. 어제만 해도 좋은 일도 있었고, 걱정스런 일도 있었다. 좋은 일도 계속 좋을 리 없고, 걱정스런 일도 매양 한가지는 아닌 줄 안다. 어제는 정월대보름이기도 했다. 달님께 소원 비는 것도 잊고, 닭똥집 앞에 두고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았다.
화장실 청소원인 주인공 남자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있다. 일뿐만 아니라 출퇴근 시간 음악 듣기, 단풍나무 화분에 물 주기, 자신이 점찍은 나무우듬지 사진 찍기, 자기 전에 책 읽기 등 남자가 보여주는 나름의 취미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일이든 취미든 반복이긴 하되 그 안에도 변화가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라는 대사처럼 어제와 오늘이 똑같다면 인생은 얼마나 시들할 것인가. 그런 일이 없는 줄 알기에 뭔가 다른 상황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를 끝까지 품게 한다.
영화는 그런 기대에 부응한다. 뜻밖의 반전이나 변화를 통해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스토리가 끝나고 마지막 장면에서 울 듯 웃을 듯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는 남자의 얼굴 변화로 영상 앞의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힘이 있다.
인생은 매순간 다르게 다가오지만 <퍼펙트 데이즈>를 보며, 오히려 흠결 없는 하루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 연상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시구 하나가 머릿속에 맴돈다. “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목마와 숙녀」 중)하는 박인환 시인의 시구다. 통속과 인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인데 삶은 거기서 거기, 넓게 보면 다 통속적이라는 데 동의가 된다.
다만 그 안에서도 소소한 무엇인가가 삶의 의미를 환기시켜 준다는 생각이다. 영화 속 남자가 성심으로 변기를 닦는 모습도 그러하고, 고목 발치에 떨어진 어린 단풍나무가 삶을 이어가게끔 화분에 옮겨 담으며 흐뭇해하는 모습도 그러하다. 소소한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무엇이 되기도 하는 게 생의 묘미 아닌가 싶다.
청소 중 화장실 출입하는 여자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스스럼없이 대하던 남자는 함께 일하는 직원이 일을 그만두게 되자 혼자는 일이 많아서 안 된다고 평소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빠른 조치를 요구할 줄도 안다. 늘어난 노동 강도가 앞서 그의 취미나 일상 루틴을 방해하는 것을 꺼리는 마음으로도 이해된다.
<퍼펙트 데이즈>란 영화 제목처럼 완전한 하루는 있는 걸까. 대답은 궁하지 않다. 자신이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다. 닭똥집에 맥주 한 잔을 기울이다가 엔딩 장면을 보는 순간만큼은 퍼펙트 했다고 해두자. 유효 기간 표시가 없으니, 달님에게 빌지 못한 소원도 지금 빌면 되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