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우리를 황폐하게 하는 것들/ 소설가 공선옥

톰소여와허크 2010. 8. 29. 20:49

우리를 황폐하게 하는 것들/ 소설가 공선옥

일본의 건축거장 안도 다다오가 한국에 와서 강연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그런데 기사 제목이 ‘일본 고졸 출신 건축 거장 안도 방한 강연’이다. 대학졸업자가 아닌 고졸 출신이 세계적 건축가인 것이 신기해서였을까. 부러워서였을까. 아니면 고등학교 졸업자가 ‘건축 거장’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어쨌든,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고등학교 졸업자가, 다시 말해 대학 졸업을 하지 않을 사람이 뭔가 자기 일에서 성과를 내거나 인정을 받으면(그것도 국제적으로) 그것이 곧 기사거리가 되는 사회임에 분명하다.
안다 다다오는 14살 때 이웃집 목수와 함께 자신의 집을 개축하면서부터 건축에 흥미를 느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렵고 성적도 안 따라줘 대학을 포기하고, 17살 때는 싸우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어 프로복서가 되어 23경기를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돈을 번 뒤 세계여행을 하면서 유명한 건축물들을 보며 독학으로 건축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도 다다오처럼 누구나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자기 하는 일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그런데 꼭 인정을 받아야 하나?)들의 불안감, 확신 없음, 두려움 등의 결과로 올해도 수많은 고3 수험생들, 재수생들, 삼수생들이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을 안 나오면 사람대접도 못 받는다, 라고 말하는 이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기도 하다. 대학을 안 나오면 똑같은 일을 해도 대학졸업자와 보수가 다르고 승진 기회가 다르게 주어지고 승진 속도가 다르다. 똑같이 대학을 나왔어도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취직 여부가 결정되고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오죽했으면 자기 일하는 분야에서 빛나는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조차 학력을 감추거나 속이는 일이 벌어질까.
대졸자 우대, 대학 서열화의 사회에서는 필시 ‘학력 노이로제’와 ‘학력 콤플렉스’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졸자와 고졸자, 무학력자 누구에게나 재능만 있으면 똑같이 대우해주는 사회,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회에서라면 멀쩡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학력지상주의 사회에서는 곧바로 바보가 된다.
그렇다고 피터지는 경쟁에서 이겨서 대학을 가고, 누가 정해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류대학을 나왔다 해서 그 사람이 진정 똑똑한 사람인가? 그는 전혀 바보가 아닌가? 나는 만약에 대학 졸업자 우대 사회에서 대학 안 나온 사람들이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다면 대학을 나온 쪽도 바보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불확실하긴 하지만 그래도 고졸자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대학에 가기 위해 그들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입시 공부’라는 공부도 아닌 공부를 위해 ‘바보’들이 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 바보들이 대학을 가면 또 ‘취업 공부’라는 공부도 아닌 공부를 위해 다시 한 번 바보가 되어 살아야 한다.
취업 공부라고 해봤자 거개가 ‘영어 공부(?)’ 뿐이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영어를 배우고 있는 그 시간에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다른 공부, 진짜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참 속이 상한다. 우리가 영어 공부하고 있을 때 그들이 진짜 공부를 해서 나온 결과를 우리는 또 ‘선진 문물’, ‘선진 사조’, ‘선진 문화’라고 해서 따라가기 바빠질 테니까. 그렇게 선진과 후진의 차이는 벌어진다. 우리가 입시, 취업 공부 하는 대신 진짜 공부, 자신과 타인들을 행복하게 하는 공부를 해서 성과를 내면 우리를 배우러 그들이 오게 될 터인데, 우리는 오늘도, 우리를 버리고 그들을 따라가기 바쁘다. 그 잘난 영어 쓰는 사람들을 못 따라가서 안달이다. 영어 공부하는 동안 황폐해지고 있는 정신을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