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촛불/ 복효근
삼겹살 함께 싸 먹으라고
얇게 저며 내 놓은 마늘쪽
초록색 심지 같은 것이 뾰족하니 박혀 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마늘어미의 태 안에 앉아 있는 마늘아기와 같은 것인데
알을 잔뜩 품은 굴비를 구워 먹을 때처럼
속이 짜안하니 코끝을 울린다
무심코 된장에 찍어
씹어 삼키는데
들이킨 소주 때문인지
그 초록색 심지에 불이 붙었는지
그 무슨 비애 같은 것이 뉘우침 같은 것이
촛불처럼
내 안의 어둠을 살짝 걷어내면서
헛헛한 속을 밝히는 것 같아서
나도 누구에겐가
싹이 막 돋기 시작한 마늘처럼
조금은 매콤하게
조금은 아릿하면서
그리고 조금은 환하게 불 밝히는 사랑이고 싶은 것이다
- 『마늘촛불』 , 애지, 2009.
감상- 가까운 사이끼리 둘러앉아 자질구레한 얘기 나눌 때 삼겹살만 있어도 분위기는 절로 산다. 삼겹살에 소주 기울일 분위기가 되면 더욱 좋고, 김치와 된장과 마늘로 구색을 맞추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마늘이 좋다고 해서 생마늘 여러 쪽을 냉큼 먹을 순 없다. 그랬다간 속에서 때아니게 열불이 날 수도 있다.
삼겹살을 마주한 시인도 마늘 몇 쪽을 좋게 해치웠는지 “속을 밝히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게다가 맵고 아릿하기까지 하다면 마늘에 혐의를 둘 수밖에 없다. 그제야 마늘 안쪽의 초록 심지가 처음 보듯 눈에 띄었을 것인데 시인은 이를 그냥 지나지 않고 초록 심지를 마늘아기로까지 생각하게 된다. 마늘 한 쪽도 귀한 생명이겠거니 생각하는 순간 “속이 짜안하니” 마음이 쓰인다.
작고 소소한 것에서도 오롯한 존재를 보는 건 시인만의 감식안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별나게 마늘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건 아니다. 어차피 마늘은 마늘이고, 먹어야 하는 양식이다. 시인은 마늘 심지와 자신의 속을 밝힌 마늘에서 타인과 세상을 환하게 해주는 촛불의 이미지를 연상하고, 자신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어 한다. 자신이 힘들더라도 심지를 기꺼이 태워서 상대가 더 환해지고 결국엔 주위 전체가 환해지는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이제 마늘 없는 삼겹살은 안 되겠다. 너와 나 사이에 어둠이 걱정되면 마늘촛불을 켜서 고깃점 위에 얹어주는 센스도 필요하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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