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바람벽/ 이사랑

톰소여와허크 2010. 8. 30. 10:08

바람벽/ 이사랑


누구를 기다리는지

담 너머 골목길 넋 놓고 바라보는 해바라기

고개 아프겠다

가슴 활짝 열어놓고, 녹슨 철대문은

또 누구를 기다리지?

마을회관으로 출근하시는 울 엄니가

하시는 일은 고작,

화투판 한 쪽에서 조용히 주무시는 일

시끄러운 세상이 듣지 말라고 귀를 막았고

어지러운 세상이 보지 말라고 눈을 감긴

당신 소원은 잠자 듯 가는 것

남들은 돈 몇 푼에 핏대 올리지만

울 엄니가 어쩌다 화투를 치면 웃음판이다

잃어주며 즐거운, 욕심 없는 울 엄니

십 원짜리 웃음으로 하루해가 저물면

울 엄니의 속 깊은 친구는 바람벽이다

영감은 참 행복하시겄수

나랑 같이 가지 머시 그리 바쁘다고,

벽에도 귀가 있어 그 말씀 알아듣는다

사람이 그리운 날은 이놈, 이놈!

컹컹 짖어대는 애꿎은 개만 나무라시다

텔레비전 저 혼자 떠들든 말든

바람벽을 마주보고 주무시는,

푸른 양철지붕 아래 울 엄니


- ≪우리시≫ 2009.11월 수록


- 어머니의 집은 대문을 열어놓아도 바람만 지나기 일쑤이다. 바람벽이 있어도 한데와 같은 느낌을 준다. 어머니의 외로움 탓이다.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듯한 바람벽은 어머니의 말벗이 되어주면서 다시 쓰임새가 새로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의 크기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돌아올 대답이 없는 일방적 푸념이기 때문이다.

  화투판이나 텔레비전은 가벼운 웃음을 흘리지만, 또 그런 재미가 꼭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소통하고 싶은 대상의 부재는 그만큼 크고 깊어서 어머니는 스스로 산화되어 녹이 되고 아예 사라지실 것만 같다.

  먹먹한 슬픔은 화자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는 바로 이 시대의 쓸쓸한 노년이고, 우린 어머니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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