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그리며/ 임보
생각하지 않으리
하루 종일
삽을 들고
땅이나 파리
육신이 지쳐
허기가 들면
도토리에
막걸리 한 사발
- 『가시연꽃』, 시학, 2008.
* 주말마다 산행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현실의 이런저런 생각을 지우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다. 사람 사이, 일 사이 치이고 치여서 두통거리를 달고 입산하였다가도 하산할 때쯤이면 달고 온 놈을 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리가 팍팍할 정도로 걷는 사이에 몸이 힘든 것에 비례해서 생각은 단순해지고 맑아진다는 것이다.
화자가 시 뒤에 덧붙인 말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들 때문’이라 했으니 그걸 내려놓는 자체가 삶을 한결 여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마치 컴퓨터 사용 후 이런저런 불필요한 파일이나 흔적들을 휴지통에 비우면 성능이 한결 나아지는 이치와 같다.
현실 속 이해관계와 그로 인한 갈등이 첨예하면 할수록 산에 대한 그리움을 커질 것인데 아예 생각을 바꾸어 주말의 산행이 아니라 산에서의 삶이면 어떨까 하고 화자는 속내를 슬쩍 내비친다. 삽 들고 땅 파는 것은 최소한의 생계를 생각하는 또 하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배낭에 도시락 넣고 소풍가듯이 떠나는 산행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노동 끝에 쉽게 허기지는 삶에서 보듯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꿈꾼다면 산으로 가는 것은 후회막급의 선택이 될 것이다. 대신에 마음의 평화나 안정을 위한 것이라면 산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산에서의 삶은 욕심을 줄여야 한다. “낚시로 두 마리만 잡으면/ 종일 낮잠”(동시집 <어부> 중에서)인 어부의 처세를 배워야 한다. 게으를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가져야 한다. 물론, 한 마리도 못 잡을 때에 대한 마련도 있어야 진정한 산촌 삶이라 하겠는데 그걸 의식했기에 화자는 삽을 들었을 것이다. 노동을 떠난 삶은 말 그대로 이상일 뿐이다. 기쁘게 땀 흘리고 잠시('충분히'로 수정하는 게 낫겠다) 쉬어 막걸리 한 잔 들이키는 삶! 상상만으로도 목울대를 타고 속이 시원해진다. 간절하게 원하면 현실이 된다는데 자꾸 머뭇거리게 되는 건 현실에 볼모로 잡힌 것들이 많아서일까.(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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