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는 꽃/ 방인자
분꽃은 순해서 슬프고
박꽃에서는 보리쌀 냄새가 난다 하시던
팔순 노모의 기억 주머니는
아직도 생생하다
분꽃과 박꽃 피는
보리저녁이면
이모집 까망 부엌에서 꽃불에 눈물 말리던 어린 어머니
세 살 때 할머니 잃으시고
열여섯 되는 동안 피웠을 열꽃을 생각하면 나도 빨갛게 탄다
쌀독 밑바닥을 긁듯 속정 다 퍼내시는 동안
여든의 기둥엔 숭숭 구멍이 뚫리고
삐걱거리는 걸음걸음이 시리다
분꽃 흐드러지게 핀 삽짝에 마주 앉아
잘 여문 꽃씨 속 하얀 꽃분 찍어 바르자
시들지 않는 꽃이 다시 화사사 피어난다
-≪우리시≫ 2010.3월 수록
- 분꽃과 박꽃은 외자 이름에서 풍기는 천연덕스런 느낌대로 별로 까탈진 일 없이 문간에 기대서도 잘 자라 줄 것 같다.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은 어스름이 오는 보리저녁(해가 지기 전의 이른 저녁. 보리밥은 보통 두 번을 삶아서 짓기 때문에 보리쌀을 일찍 안쳐야 하는 데서 온 말-사전 인용)에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다.
해에게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어둠을 기다렸다가 피는 분꽃과 박꽃은 어머니의 쓸쓸하고 가난한 삶에 그대로 겹쳐진다. 어린 나이에 이모집에 맡겨져서, 보리를 안쳐 놓고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을라치면 별별 생각이 나겠다. 보리 익는 냄새가 지붕 위 박꽃에도 스미기도 했을 것이다.
어느새 아이는 어머니가 되고 늙기 시작한다. 어려서 혼자가 된 것 못지않게 늙어서 혼자가 되는 것도 쓸쓸한 일이다. 화자는 아궁이 앞에 빗자루 깔고 앉아 어머니의 외로움을 나누려는지 기꺼이 ‘빨갛게 탄다’. 분꽃이 흐드러지게 피듯이, 박꽃이 환하게 피듯이 ‘삽작에 마주 앉아’ 보는 시간은 어머니에게든 화자에게든 지켜보는 삼자에게든 아주 흐뭇한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이 작품의 모델이 시어머니라고 했다. ‘불을 끄고 누워 깜깜한 허공을 짚으며 밤새 듣던 시어머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단다. 그러니 어머니도 이야기꾼이고 시인도 이야기꾼인 셈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신명이 나는 법이기도 하다.
집에 아이도 자장가 대신에 시들한 사람의 시들한 이야기를 재촉하고 열심이 들어준다. 그래서 서로가 꽃인 양 싶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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