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숙맥 박종규/ 안상학
신문 지국을 하는 그와 칼국수 한 그릇 할 요량으로 약속 시간 맞춰 국숫집 뒷방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터억하니 두 그릇 든든하게 시켜놓고 기다렸는데 금방 온다던 사람은 오지 않고 국수는 퉁퉁 불어 떡이 되도록 제사만 지내고 있는 내 꼴을 때마침 배달 다녀온 그 집 아들이 보고는 혹 누구누구를 만나러 오지 않았냐고 은근히 물어오길래 고개를 끄덕였더니만 홀에 한 번 나가보라고는 묘한 미소를 흘리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마당을 지나 홀 안을 빼꼼 들여다보니 아연하게도 낯익은 화상이 또한 국수를 두 그릇 앞에 두고 자꾸만 시계를 힐끔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아배 생각』수록
* 인물을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인물 사진작가도 마찬가지이겠지만)는 그 인물의 외양적 특성과 내면의 성정까지 담아내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인물의 소소한 버릇이나 특징, 그 밑바탕의 마음결까지 표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관찰과 그리는 재주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부침 속에 인연이 있거나 곁에서 오래 지켜본 화가가 붓을 들었을 때 그림 속의 주인공은 더 그 사람다운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안동 숙맥을 읽으니 아주 그럴듯한 초상화 한 편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시인은 알고 지내는 벗을 시적 대상으로 삼았다. 짧은 일화 한 토막을 소개했을 뿐이지만 독자는 그 인물의 일면이 아니라 상당 부분을 눈치챘을 법하다. 그 인물에 대해서 핍진하게 잘 그렸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에 대어 오지 못하는 것을 탓하지 않고 국수 면발이 불는 것만 걱정하는 사람, 상대가 미안해 할까봐 전화도 하지 않았을 사람, 따지고 재고 가리는 일에 영 숙맥인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인의 모습이 선하게 또 善하게 다가온다. 칼국수는 숙맥끼리 먹어야 제맛일까.(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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