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락(1958-, 경북 의성)
이 글은 시인이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김용락 시인은 1959년 5월 25일(실제 출생은 1958년 음력 5월 22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 825-2에서 태어났다. 위로 누님 네 분과 밑으로 남동생이 하나있다. 김 시인이 태어난 단촌은 행정 구역상 의성군에 속하지만 마을 앞에 있는 조그만 내(川) 하나만 건너면 안동시이고, 안동 일직면 소호리에는 퇴계의 고제인 조선조의 거유 대산 이상정의 사당과 달성 서씨의 후손인 서성의 소호헌이 있는 곳이다.
이런 지리적인 요인과 어머니가 달성 서씨라는 것 등이 어우러져 어릴 때는 유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흔히 안동은 벼슬보다는 학문, 학문보다는 지조를 중히 여긴다고 하는데 이런 가치관이 어린 나에게 알게 모르게 내면화되어 실리보다 명분과 체면, 정의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갖게되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안동에서 마치고 대구로 유학 나왔다. 사춘기를 맞이한 내성적인 소년에게 가족과 떨어져 혼자 객지에 나와 생활한다는 것은 무척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이때 독서에 열중했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 들어가기 싫어 학교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소설책과 불교서적(재학 중인 고등학교가 불교학교였다) 등을 읽었다. 이때 프로이트, 불교경전, 랭보, 보들레르 같은 불란서 상징주의 시인들의 시를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열심히 읽었다. 당시 도서관 사서선생님(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이었듯)이 네가 그렇게 어려운 책을 제대로 이해하느냐고 핀잔을 줘 대판 싸우기도 했다.
대학 진학은 재수 후 신동집 시인이 있던 계명대 영문과로 했다. 이때까지는 소설가가 꿈이었는데, 입학 후 습작시 몇 편을 가지고 선생을 찾아뵈었더니 대뜸 추천하자는 바람에 남보다 빨리 시인이 되고 싶어 소설을 포기하고 시 습작에 열중했다. 이때까지는 주로 허무주의 경향의 시를 썼다. 가난, 외로움, 일류대 진학 실패 등에 다른 열패감 등 복합적인 정서가 허무주의와 퇴폐적인 정서로 나를 몰아갔다.
당시 학교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유일하게 도서관에 책 빌리기 위해 학교에 가곤 했는데, 혼자 속으로 도서관 책을 다 읽고 말겠다는 다소 허황한(?) 다짐을 속으로 하기도 했다. 수업은 전혀 안 듣고 오로지 도서관의 책만 읽었다. 그 결과 한 학기는 19학점을 신청해 15학점을 F 받아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다. 신동집, 강은교, 박재삼, 박제천, 랭보, 보들레르의 시를 주로 읽었다.
1979년 10. 26이 일어나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윤상수(극작가)와 함께 자취방에서 만세를 부른 후 시내로 진출했다가 형사들에게 잡혀 곤욕을 치를 정도로 당시 유신시대 정치적 현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나, 문학은 여전히 허무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80년 5월 광주항쟁을 겪으면서 허무주의적 경향의 문학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듬해《몽실언니》의 동화작가 권정생과 《민중시대의 문학》의 문학평론가 염무웅을 만나면서 소위 역사의식, 현실의식에 본격적인 눈을 떴고 문학적 경향이 급격히 참여문학, 민중문학으로 바뀌게 되었다. 당시 학생데모로 대부분 대학이 장기간 휴교 중이었는데 이 기간 중에 이웃에 살고있는 안동 조탑동의 권정생 선생을 처음 찾아뵙고 가난하게 사는 모습과 현실주의적인 문학관에 충격을 받고, 권정생이 권하는 농민운동가를 만나면서 80년대 민중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아울러 계간지 <문학과 지성>파 이성복 시인을 대학 4년 때 만나면서 문학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의 새로움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4년 창작과비평사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정식 데뷔하고 배창환, 도종환, 정대호, 김종인, 김윤현, 김창규, 김희식 시인 등과 <분단시대> 동인을 결성하여 분단시대 극복에 문학이 기여해야한다는 리얼리즘 문학운동을 펼쳐나갔다. 대학 졸업 후 안동공업고등학교에서 3년 간 교편을 잡았다. 당시 경북 북부지역의 가난한 실업계 학생들의 농촌현실을 직접 목격하면서 민중의 참상을 깨달았고, 권정생, 이오덕, 전우익, 권종대(농민운동가), 가톨릭 농민회원, 선후배들과 만나면서 독서하고 토론하고 영화 보면서 전두환 군사정권 5공의 암울한 현실에 분노하기도 했다. 마리스타 야학 교사도하고 전교조의 전신인 <Y중등교사회> 안동 지회장을 맡아 교육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내 문학뿐 아니라 사상적 뼈대가 완성되던 때였다. 그만큼 행복한 시기였다.
안동에서 교사 생활을 끝내고 대구로 올라와 대구경북민족문학회를 문단 선후배들과 함께 만들었고, 신문사 기자가 되어 노조활동으로 파면 후 구속과 수배생활을 겪었다.
내성적이고 책읽기를 좋아하던 시골 소년이 외로움 때문에 허무주의 시인, 문학청년이 되었다가 가파른 우리나라 현대사의 질곡, 특히 유신 군사독재, 광주사태와 농촌의 보편적인 가난, 참혹한 민중현실에 영향을 받아 민중민족시인으로 변하게 되었던 셈이다. 문학관이 변모한다는 것은 단순히 문학적 입장만 바뀌는 게 아니라 글 쓰는 자의 실존적 존재 근거가 바뀌는 일인만큼 민중문학을 하면서 억압적인 군사정권 아래서 탄압도 받았고 유무형의 불이익도 많이 받았다. 안락한 소시민적 삶을 사는 데는 방해가 된 게 사실이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권익을 위해 나름대로 역사적 인간으로 실천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해서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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