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일화(ㅂ-ㅇ)

박종화(1901-1981, 서울)

톰소여와허크 2010. 8. 30. 15:32

박종화(1901-1981, 서울)

 

 월탄의 술친구 중 가장 가까웠던 사람은 변영로, 염상섭, 이하윤, 현진건 등이었다. 이들은 충신동 월탄의 집에서 아주 살 정도였다. 박종화의 부인이 담근 동동주가 가장 인기 좋은 술이었다. 이들은 모두 술을 너무나 좋아해서, 아예 집에서 술을 먹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에 박종화의 운치 있는 집에 자주 모였다.

 간혹 밖에서 술을 먹는 날이면 어김없이 다방골(지금의 무교동)을 찾았다. 그러고도 술이 모자랄 때면 인근의 종로와 을지로 뒷골목을 아예 순회하며 마셨다. 작정하고 술을 마신 날이면 사발로 40-50잔은 기본이었다.

 이들이 즐겨 찾았던 술집으로, 먼저 술집 주인이 술독의 술을 퍼서 가마솥의 더운 물에 중탕을 해 어느 정도 데워지면 도자기 잔에 담아 내주는 술집이 있었다. 안주는 낙지였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날이면 안주가 달라진다. 너비아니와 낙지회, 민어구이 등이 한상 차려지고 술맛도 더 났다. 또 받침 술집이라고 해서 아예 소주를 만드는 도구인 용수를 놓고 술이 만들어지는 대로 그릇에 받쳐 먹는 술집도 있었다.

 그들은 이런 술집들을 돌며 술을 마셨다. 술에 얽힌 일화들이야 많지만 세상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얘기를 하나 적어본다.

 박종화가 성균관대학교에 출강하던 때의 일이다. 그가 수주 변영로와 횡보 염상섭 등과 함께 만취해서 발가벗은 채 황소를 타고 성균관대학교 뒷산을 내려왔던 일이 있었다. 결국 동네 사람들의 신고로 경찰에 끌려갔다 풀려나는 곤욕을 치뤘다.

 또 다른 일화도 있다. 박종화의 집엣 술을 마시던 날이었는데, 이날도 모두 취해 곤히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밤새 도둑이 들어 그 집의 신발이란 신발은 다 훔쳐가 버렸다. 아침에 일어난 뒤에야 사람들은 신발이 없어진 것을 알고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하는 수 없이 박종화는 사람들에게 짚신을 나눠줄 수 밖에 없었다. 때는 엄동설한, 추운 겨울날이었다.

 집에서 술을 마실 때면 안주는 항상 민물게장이었다. 미식가이기도 했던 박종화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민물게장을 부인 김창남씨는 항상 만들어 놓았다. 민물게는 보통 때는 독이 있어 먹을 수 없으며 10월경에 잡아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때 잡은 게로 장을 담궈 놓고 일년 내내 먹는 것이었다. 이 민물게장을 안주로 밤새 술을 마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술을 먹어도 다음날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약속한 일에 대해서 1분도 늦지 않았던 박종화였다. 그의 규칙적이고도 약속을 정확히 지키는 생활태도는 대작<세종대왕>을 장장 8년 동안 매일같이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