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1917-1945, 북간도)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부친 윤영석, 모친 김용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조부 윤하현은 부유한 농부로서 기독교 장로였고, 부친 윤영석은 명동학교 교원이었다. 윤동주는 태어나서 곧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동주는 1925년(9세) 송명규(동주의 고종사촌), 문익환 등과 명동소학교에 입학해서 1931년 졸업했다. 1932년 용정에 있는 은진 중학교에 입학했다. 은진 중학교 때의 그의 취미는 다방면이었다. 축구선수로 뛰기도 하고 밤에는 늦게까지 교내 잡지를 내느라고 등사 글씨를 쓰기도 하였다. 기성복을 맵시 있게 고쳐서 허리를 잘룩하게 한다든지 나팔바지를 만든다든지 하는 일을 어머니 손을 빌지 않고 혼자서 재봉틀로 하기도 하였다. 학교 축구부원들 유니폼에 넘버를 다는 일도 동주가 직접했다.
1935년(19세) 문익환의 뒤를 이어 평양숭실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으나, 편입 시험 실패로 4학년에서 3학년으로 편입되었다. 당시 꾸깃꾸깃 우그러진 모자를 몹시 싫어해서 친구인 문익환에게 호떡을 사주고 모자를 서로 바꾼 일은 반듯한 것을 추구하는 동주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편입 일년 후에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 표시로 동주는 자퇴했다.
1936년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해서 다음 해에 졸업했다. 광명 중학 시절 농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동시를 발표하는 등 문학 수업에도 열중했다. 용정은 추운 곳이어서 교복에 안감을 대는 일이 상례인데, 한번은 아버지가 안감을 대라고 준 돈을 달리 써버려서 야단맞은 적이 있었다. 그 돈으로 책을 샀기 때문이었다. 백석 시집 <사슴>을 구할 수 없게 되자, 학교도서관에서 일일이 손수 베껴 필사본을 만들어 가지기도 했다.
1938년(22세) 아버지의 반대(의과를 희망)를 무릅쓰고 서울 연전 문과에 입학했다. 기숙사에서 송몽규, 강처중과 한 방을 쓰면서 연전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송몽규는 윤동주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되고, 윤동주를 세상에 알린 장본인인 강처중(일본에서 편지로 보내온 윤동주의 시작품 보관)은 좌익 활동으로 해방 후 처형되었다.
이후 기숙사와 하숙집을 오가면서 후배 장덕순, 정병욱(연전 시절의 윤동주의 유품과 시작을 보관)과 사귀게 되었다. 1941년(25세) 졸업 기념으로 시집을 출간하려 했으나 시국이 좋지 않다는 이양하 교수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1942년 윤동주는 일본의 동경 입교대학을 거쳐 일본의 동지사 대학 영문학과에 전입학했다. 동지사 대학은 동주가 청소년 시절에 열렬히 좋아했던 정지용 시인이 유학한 곳이기도 했다. 일본 유학을 위해서는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동주가 창씨개명계를 제출한 날은 [참회록]을 쓴 지 닷새 만이다. 즉 일본 유학을 결정하고 그걸 위해선 자신의 손으로 창씨개명계를 제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각오했을 때, 그 뼈아픈 욕됨으로 인해 쓰여진 것이 곧 [참회록]이라는 것이다.
1943년(27세) 특고경찰에 의해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된 윤동주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45년(29세) 2월 16일 복강 형무소 안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사망했다고 한다. 북간도 고향집에서 동주의 사망통지 전보를 받은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가지로 도일했다. 먼저 송몽규를 면회했더니, 자신이 이름 모를 주사를 강제로 맞고 있다고 했으며, 동주도 그래서 죽었다는 진술을 했다.
한 줌의 재로 변한 동주의 유해가 돌아올 때, 가족이 마중을 나갔다고 한다. 몹시 춥고 흐린 날, 두만강 다리를 건너는 동주 가족은 각자의 울분을 달래면서 한마디 말도 없었다. 3월 6일, 북간도 용정동산의 중앙교회 묘지에 윤동주 유해를 안장했다. 그때 동주의 [자화상]과 [새로운 길]이 낭독되었다. 그 다음날 송몽규가 형무소에서 사망했다.
정지용은 윤동주 시집 서문에 "일제 헌병은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고 썼다.
송우혜, [윤동주 평전], 세계사, 1998.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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