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 시각 : 2002.09.03 21:30:02
자전거 도둑(김소진 전집3), 김소진, (주)문학동네,2002
영남대에서 이상하게도(?) 오래가는 서점, '남도책방'에 들렀다. 김소진 좋아하세요, 물어오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한 순간 당황했다. 아니요, 어 아니요, 싫다는 게 아니고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랬더니 '좋은 사람이에요' 하고 책을 넘겨주었다. 지금은 없는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이 쓴 <자전거 도둑>에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 나온다. 자전거 주인인 남자와 자전거 도둑인 여자가 그 여자네 아파트에서 '자전거 도둑'이라는 비디오를 같이 본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자전거를 훔치다가 주인에게 들켜버렸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아버지의 수치와 자기 모멸감이 화면을 뜨겁게 만들었지 싶다.
화면을 보면서 남자는 자신의 아픈 과거 이야기를 여자에게 들려준다. 소주 두 병 때문에 거래처 주인에게 욕보고, 자식에게 손찌검해야 했던 아버지의 속울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여자도 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잘 타던 이모저모로 잘난 오빠가 있었다. 어느 날 핸들을 놓치고 영화 속 자전거 도둑처럼 간질병 환자가 되어 땅바닥을 비비적거리는 오빠를 보면서 삶이 어두워졌다는 이야기이다.
화면 속의 어둠이, 이를 지켜보는 두 남녀의 표정에도 드리워져 있다. 아마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어둠이 어느새 물들여져 있을 것이다.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두 사람은 잠시나마 자신의 삶의 무게로부터 놓여나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삶을 따라왔던 독자들도 말하고 싶으리라. 자신의 어둠을, 그늘을 주절주절 뇌까리면서 훨훨 가벼워지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좋은 소설과 좋은 시의 출발점은 자신의 어둠을 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자전거 타고 '자전거 도둑' 빌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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