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 시각 : 2003.05.05 12:35:50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2001.
자기가 원하는 데 주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걸 욕망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이 진보되어 왔다고 믿는다. 물론, 타인을 해치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경우는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 실현시켜서 스스로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갖게 될 때, '자아의 신화'를 이루었다고 말해도 좋지 싶다. 삶의 완성은 자아의 신화를 사는 것이고, 삶은 자아의 신화를 추구해가는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보다 나은,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몹시 그리워하면서 너와 나는 지금을 살고 있다. 그래서 지금과 달라지려고 애쓰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저 산 너머 행복이 있다고 말하기에/ 남 따라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습네./ 저 산 너머 좀 더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하건만.]
내가 한때 좋아해서 외우던 카알 붓세의 시이다. 저 산 너머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을 살게 한다는 내용이다. 산을 넘어 실망을 할 지도 모르지만, 또 '저 산 너머'가 있기에, 거기에 대한 의문과 그리움이 있기에 산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산티아고는 '저 산 너머 행복'(자아의 신화)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일에 만족을 느끼고, 양털 가게의 딸을 좋아했던 평범한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는 어느 날 익숙해져 있는 삶을 벗어나서,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선택했다.
아프리카로 떠난 여행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세상과 연금술을 이해하고자 욕심내는 영국인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은 수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라며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해주는 산티아고는 이미 성숙한 인격체가 되어있었다.
산티아고가 내적인 갈등에 가장 휩쓸렸을 때는 사막에서 만난 여인 파티마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키워나가면서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 오아시스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함께 살 것인가, 자아의 신화를 위해 길로 또 떠날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후 진정한 사랑은 자기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산티아고는 길로 나설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법정 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사랑은 함께 해서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해나가며 같은 곳을 본다는 말이었을 게다.
마침내, 산티아고(소설 속 주인공)는 만물의 언어를 깨우친 다음, 바람과 해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물에게는 저마다 자아의 신화가 있고, 그 신화는 언젠가 이루어지지. 그게 바로 진리야. 그래서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존재로 변해야 하고, 새로운 자아의 신화를 만들어야 해. 만물의 정기가 진정 단 하나의 존재가 될 때까지 말이야."
산티아고는 하나의 산을 훌쩍 넘었다. 자아의 신화를 살고자 했던 개인의 욕망과 주위의 가르침이 어우러져서 산티아고의 깨달음(주관적인 깨달음일 수도 있지만)을 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또 하나의 산이 그를 손짓하며 부르고 있음을 곧 보게 될 것이다. 산은 연이어 있고, 삶은 진행형이므로.
소설 속 하나의 글귀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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