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문학동네
페루 해변 어디쯤에선가는 새가 날아와서 죽는 새의 무덤 같은 모래사장이 있다. 그곳에 한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투쟁했던, 그러나 모든 걸 과거로 두고 세상을 등진 사내가 있다. 그 사내는 자신이운영하는 카페 앞에서 미모의 젊은 여성이 투신하려는 것을 구한다.
겁탈 당하고 상처 입은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는 순간, 그 여인의 남편이 찾아온다. 남편은 여인보다 여인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더 신경 쓰는 눈치이다. 여인은 사내에게 왜 나를 구했느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던진다. 절망이란 단어는 이런 경우에 쓰여야 할 것이다.
새가 왜 그 해변에 가서 죽는지 작가는 끝내 전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이유 하나쯤은 있을 것이란 게 전부이다. 절망의 이유를 묻는다 해도 그렇게 둘러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밖에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끼리 벽을 등지고 한번도 속마음을 소통하지 못한 채 불행하게 죽어가는 이야기인 <벽>, 전쟁 중 남성의 폭력에 희생되어 스스로 눈을 감고 장님으로 살아가는 처녀가 다시 한 번 폭력의 대상이 되는 <지상의 주민들> 같은 단편이 인간 존재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엿보게 한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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