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톰소여와허크 2010. 8. 31. 22:25

강신주,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도서출판동녘, 2010.

- 자신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고민하고, 그런 자신이 이웃 혹은 세상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살아야 하는지 곰곰 생각는 것이 철학의 주요 과제라면, 철학은 시와 먼 거리에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철학이든 시든 자신과 타자, 자신과 타자를 둘러싼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전혀 다르지 않다. 이런 연관 관계를 생각하다면 이 글처럼 시와 철학적 사유, 시인과 철학자를 관련짓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란 시에 등장하는 관료는 평생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너무 성실해서 식인종이 지배한다 하더라도 그 밑에서 한결같이 관리생활을 할 것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의 풍자 의도를 읽은 저자는 여성 철학자 아렌트의 글을 떠올린다. 나치 시대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보며 그가 대단한 악당이 아니라 지극히 근면하고 평범한 가장이란 데 충격 아닌 충격을 받은 그녀는 “무사유가 인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고 기록했다.
김남주 시인과 아렌트는 근면이나 성실한 행위가 이성적이고 반성적인 사유를 동반하지 않을 때의 위험에 대해 똑같이 말하고 있다. 다만 말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이 책은 21 명의 시인과 21명의 철학자를 연결지어 생각의 장을 마련해 두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의 구별이 불확실한 세상이다. 자신의 존재와 행동방식에 대해서, 공동체의 가치 지향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게 좋다. 좀더 나은 삶으로 가기 위한 시끄러움은 조용한 파멸보다 낫기에 그렇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