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조병기
어디선가 시래기국 끓이는 냄새가 난다.
어디선가 솔가지 타는 냄새가 난다.
함박눈 추억처럼 긴긴 밤을 내려 덮이면
사람이 그리워지는 때
어드메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들려온다
세상살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그리움과 기다림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 사랑이 있기 때문.
어디선가 아이들 소리 멀어져 가고
행복한 오늘의 살아감이여!
어디선가 청국장 끓이는 냄새가 난다.
- 『산길을 걸으며』 수록
- 잘 산다는 게 뭘까. 이리저리 둘러대는 말을 곁가지 치고 나면 아마도, 행복한 마음이 남게 되지 않을까. 평화로운 가운데 자신과 주위를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서 지속되는 상태라면 잘 산다는 말을 써도 무방할 것 같다. 다들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말하지만, 삶의 우여곡절을 지나오면서 불화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그리하여 시름에 쌓여 있을 때가 적지 않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행복을 잃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다투어 연출하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삶이란 게 행복에 다가가는 방법을 연습하다가 끝내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연습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위 시는 후각적 표현이 단연 두드러진다. 시래기국 끓이는 냄새에서 시작하여 청국장 끓이는 냄새로 끝난다. 후각은 자연스레 미각을 자극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후각의 안쪽, 화자의 기억을 새로 지피는 역할도 할 것이다. 이를 테면, 밥상에 둘러앉은 정다운 얼굴과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하게끔 말이다.
후각은 다시 시각으로 옮아간다. 함박눈 내리던 시각적 이미지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고, 개 짖는 소리와 아이들 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로 이어진다. 시인은 마을 공동체의 따스한 추억을 환기하는 모양이다. 후각, 시각, 청각에서 촉발된 이미지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랑하고 사는 건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시인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위 시는 오감이 즐거운 시이다. 나쁜 것을 듣고, 미운 것을 보고, 그걸 소화하지 못하여 끙끙대기도 하는 현실이지만, 같은 걸 먹더라도 맛나게 먹고, 같은 걸 보더라도 좋게 보는 시각이 행복에 가까이 가는 길임은 분명하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