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이동순
양말을 빨아 널어두고
이틀만에 걷었는데 걷다가 보니
아, 글쎄
웬 풀벌레인지 세상에
겨울 내내 지낼 자기 집을 양말 위에다
지어놓았지 뭡니까
참 생각 없는 벌레입니다
하기사 벌레가 양말 따위를 알 리가 없겠지요
양말이 뭔지 알았다 하더라도
워낙 집짓기가 급해서 이것저것 돌볼 틈이 없었겠지요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양말을 신으려고 무심코 벌레집을 떼어내려다가
작은 집 속에서 깊이 잠든
벌레의 겨울잠이 다칠까 염려되어
나는 내년 봄까지
그 양말을 벽에 고이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가시연꽃』수록
- 세상에 혼자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둘이 산다고 가정해도 먹는 것, 입는 것, 생각이 다른 것 등으로 인해 다툼이 생길 법하다. 사소한 다툼이야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다툼이 해결되지 않고 쌓여서 서로를 해치는 데까지 이른다면 상황이 다르다. 둘 이상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불행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를 떠나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아닌 타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비생산적인 다툼을 줄이는 일이다.
문학이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라는 말에 꼭 어울리는 시로 ‘양말’을 들 수 있다. 시적 화자는 양말을 걷으려다가 양말 속에 둥지를 튼 벌레를 본다. 깜짝 놀랐을 것이다. 화가 난 사람은 곧 양말을 패대기쳐서 벌레를 쫓거나 죽이거나 했을 것이고, 소심한 사람은 양말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양말과 벌레를 같이 내쳤을 것이다. 화자도 ‘무심코 벌레집을 떼어내려다가’ 멈칫 한다. 벌레의 겨울잠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화자는 잠시 벌레의 입장이 되어본다. 벌레는 무서운 천적을 피하고, 허기를 견디며 양말까지 이르렀다. 갖은 고생 끝에 잠자리를 마련해서, 이제 좀 쉬어볼까 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화자는 더 이상 양말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사람은 양말 하나 버리면 되지만, 벌레에겐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이니 더 망설일 이유도 없다. 그리고 화자는 너그럽게도 내년 봄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양말은 더 이상 못 신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발을 감싸는 역할보다 하나의 생명을 온전히 감싸는 게 양말에겐 도리어 값진 일이다.
하찮은 미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벌레에도 생명이 있다는 인식, 또 이 모든 생명이 소중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벌레의 평화를 보장했다. ‘나’란 존재도 결국 타자의 너그러운 이해와 보살핌에 힘입어 지금까지 성장해왔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 주고받는 이해의 폭이 넓고 깊을수록 세상은 평화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기준을 갖고 산다.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보고, 자기 기준에 따라 상대를 인정하고 비판한다. 자기 딴에는 내어줄 수 없는, 지켜야 할 원칙 같은 것도 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을 한계로 깨닫고 자신을 열어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내가 기준이 있다는 것과 내가 옳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인데, 이를 혼동하거나 착각하기 일쑤이다. 그러니 노력한다는 의미는 상대의 입장에 서 본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위 시의 화자가 온전히 벌레가 되어본 것처럼.(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