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자연론/ 정일근

톰소여와허크 2010. 9. 9. 12:40

자연론/ 정일근



풀 한 포기 밟기 두려울 때가 온다


살아 있는 것의 목숨 하나하나 소중해지고


어제 무심히 꺾었던 꽃의 아픔


오늘 몸이 먼저 안다


스스로 그것이 죄인 것을 아는 시간 온다


그 죄에 마음 저미며 불안해지는 시간 온다


불안해하는 순간부터 사람도 자연이다


-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수록


- 나쁜 세균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몸에 병을 일으키는 균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란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지나친 항생제 처방을 한다든지 하는 일은 우주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우주의 원리란 말이 거창하다면 지구가 망하지 않고 돌아가는 원리라고 해도 좋겠다. 이 세상은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가진 모든 사물과 생명이 한데 엉겨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만약, 힘 있는 누군가가 공동체의 구성원을 해치거나 함부로 대한다면 평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타인을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이 풀 한 포기, 개미 한 마리까지 미칠 때에야 비로소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상생하는 공동체의 이상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이는 자연의 말씀을 옮겨 적는 이가 시인이라고 한다. 그 말씀의 요체는 같이 잘 살자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것의 목숨 하나하나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마음이어야만 ‘꽃의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지난날 ‘무심히 꺾었던’ 자신의 죄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죄를 알면서 불안하기도 하겠지만, 죄를 모르는 용맹하고 비교할 바는 아니다. 타자에게 상처를 주는 실수를 조심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이 함께 살라는 자연의 말씀을 실천하는 밑바탕이 되어 줄 것이다.

  이 모든 게 자연의 순리대로 자연히 풀리면 좋으련만 현실은 이해관계가 부딪치면서 부자연할 때가 많다. 그러니 공동체 안에서 잘 살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을 그만둘 수 없다. 타자를 의식하고 배려하는 데에서 생긴 불안한 마음이라면, 그 불안한 마음을 파는 시인의 노래도 공동체 일원으로서 제몫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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