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 정씨의 봄/ 이명윤
벚꽃 가득한 풍경을 파일에 담는다
휴대폰을 여는 순간
(봄이다)
부르튼 입술이 봄을 한입 베어 물면
당신 잠시나마 봄이 되지 않을까
한가하게 봄 타령이라니요
어쩌면 쓴웃음 짓겠지만
언제 또 다른 일 찾아야 할지 모를 불안이
습관적으로 피고 지는 저녁
밥이 되지 못하는 봄이란
사치스런 감성으로 피고 지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길가 벚나무의 수많은 입이 터뜨리는 환한 웃음에
저게 다 출근도장이면
저게 다 밥이면 좋겠네
당신 잠깐의 미소로 행복할 수 있다면
봄이 그저 당신의 얼굴을 스쳐가는
가벼운 은유로 머물지라도
늦은 밤 찬밥을 얹은 숟가락 위에
꽃잎 한 장 올려주고 싶네
(계약기간을 연장합니다)
기다리던 통보가 오지 않는 당신의 저녁
계약하지 않아도 매년 찾아오는 봄
당신이 잃어버린 봄날의 한 컷을
돌려드리고 싶네.
- 『수화기 속의 여자』수록
* 겨울이 춥고 길수록 봄이 그리운 법이다. 좀처럼 안 올 것 같은 봄이지만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고 말 것임을 경험상 안다. 꽃구경하며 봄날을 느긋하게 즐길 만한 삶의 여유도 같이 따라오면 좋겠지만 현실은 봄 따로 밥 따로 일 때가 많다.
‘부르튼 입술’에서 짐작되듯이 살기 위해 바지런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정씨에겐 밥 없는 봄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일용직인 그에게 계약 기간을 연장한다는 통보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그의 봄은 불안하다. 아름다운 벚꽃을 마음에 담는 것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벚꽃을 보고 ‘저게 다 출근도장이면’ 좋겠다는 절박한 표현이 찌릿하게 와 닿는 것은 정씨의 마음과 가난한 이웃의 마음과 화자의 마음 그리고 독자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봄이 와도 봄을 갖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숟가락 위에 꽃잎 한 장 얹어주고 싶어 한다.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자기 숟가락에 얹힐 밥에만 골몰하는 세상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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