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문인 일화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 야스나야 폴라냐)

톰소여와허크 2010. 9. 19. 22:5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 야스나야 폴라냐)


  톨스토이는 1828년 8월 28일 중아 러시아 야스나야 폴라냐에서 네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홉 살 나던 해 아버지마저 잃고 친척의 손에 자라게 된다. 톨스토이를 돌보았던 따찌야나 알렉산드로브나는 톨스토이에게 정신적 평화와 사랑을 주었다. 그녀의 모습을 전쟁과 평화에서 소냐로 그려내고 있다.

  어린 레프는 당시의 습관에 따라 부유한 가정에서 보모, 독일인과 프랑스인 가정교사에 둘러싸여 있었고 대학에 들어갔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1847년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야스나야 폴라냐로 돌아온 레프는 농민을 행복하게 하고 농민 생활을 향상시키고자 하였으나 좌절하고 다시 검정고시로 뻬쩨르부르그 대학에서 법 공부를 한다. 그러나 다시 공부에 흥미를 잃고 술과 노름으로 돈을 물쓰듯 하며 향락에 빠져들게 된다.

  나중에는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자책하여 몇 번이나 자살을 마음먹기도 하지만 1851년 포병 연대에 복무하게 된다.

  1861년 야스나야 폴라야에서 젊은 교사들을 구성하여 농민학교를 세우고 교육사업을 벌인다. 그러다가 농민학교를 감시하던 관헌들에 의해 가택수색을 받고 문을 닫기에 이른다. 1862년 32세의 톨스토이는 모스크바 의사 베르스 집안의 딸인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게 된다.

  ‘전쟁과 평화’를 완성한 1869년 다시 교육사업으로 돌아간다. 1877년 ‘안나카레니나’를 탈고한다. 1873년 사마라 현에서 기근 구제사업을 벌이고 국외로 추방되는 교도들을 구출하여 이주시키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부활을’ 쓰게 된다. 그의 나이 71세 때의 일이다.

  만년의 톨스토이는 전세계의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농부처럼 채식을 하며 민중과 융합하기 위해 밭을 갈고는 했다. 토지 소유, 재산의 소유는 톨스토이에게는 죄악이었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빈곤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저작권도 포기하려 하나 가족과의 갈등을 겪게 된다.

  이 모든 갈등을 벗어나기 위해 레프가 선택한 것을 가출이었다. 1910년  죽을 결심을 하고 마지막 쪽지를 아내에게 쓰고  홀연히 떠난다. 중앙러시아 아스따뽀빠 역에서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아래는 톨스토이의 명언을 모은 것이다.

* 자기 희생을 동반하지 않는 자비는 거짓 자비입니다.
*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모든 비난을 해결합니다. 얽힌 것을 풀어 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꿉니다.
* 사랑이란 자기희생입니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입니다.
* 어려운 일에 직면할 때마다 나는 신께 도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신을 섬기는 것이 나의 의무이지 나를 섬기는 것이 신의 의무는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쳤고, 곧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 부단한 노력 끝에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삶에서 자유한 사람만이 진정한 인생 목적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능력이나 체력의 차이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리히텐베르그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곧 능력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권리의 평등이 더욱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혜와 힘이 불평등한데 거기다 권리마저 불평등하다면,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받는 폭압은 더욱 커져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일처럼 사람을 고상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인간은 존엄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게으른 사람은 주로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하고 깔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 진실이 진실로서 들리게 하려면,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말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메시지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을 때는 적어도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곧 거짓말을 하였던가 아니면, 정성과 마음을 다하지 않았거나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