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blog.daum.net/rosell 고우호님 작
미탄사지에서/ 이동훈
사랑을 잃은 것은 내 안의 가난을 가누지 못한 탓이라고 깐돌 하나 집어내듯 말했지만 그게 구차하고 맹랑한 핑계인 줄 미탄사지에 와서 생각한다. 쭉정이만 남은 벼는 꿀릴 게 뭐 있냐며 섰고 논배미에 앉은 석탑은 천 년 돌에 새로 뗀돌을 붙접하고 섰으니 이런 걸 궁상맞다고 하는 건 못난 사람의 억측일 뿐이다. 들녘에 어슷비슷한 벼 이삭이 수런수런 재깔이는 사이 논도랑에 고만고만한 고마리 꽃이 홍조 띤 얼굴로 마주하는 사이 석탑은 들바람 부려 놓고 잠잠한데 돌 하나 세우지 못하고 돌 하나 허물지 못하는 내 안의 가난과 그 가난을 속상해 하는 마음까지 달게 삼키는 미탄사지(味呑寺址)를 경주 발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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