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두절/ 이동훈
여남은 날, 눈이 줄곧 내려
쌓인 눈이 서까래 밑까지 이르면
다락 창문을 통해
굴뚝만 남은 그대 집을 보게 되겠지.
피어오를 어떤 희망도 없이
눈 속에 파묻힌 그대.
그대는 끝내 신호를 보내오지 않고
생각다 못하여 널빤지를 내어 밀고
전신줄을 자일 삼아
눈구멍길을 지치고 가려 하네.
막막한 그대 집으로 가려 하네.
창문께의 눈을 헤치면
그대, 나를 또 한 번 부끄러워하려나.
구호품 붉은 딱지가 선명한
라면상자를 들키고 벌게지던 그때
내 귓불이 더 벌게졌다는 사실을
나도 들키고 싶었네.
내게든 네게든 미안한 옛날을
층층 덮듯이 눈이 쌓이면
그대, 닫힌 문을 다시 두드리고 싶네.
얼어붙은 눈이 다 녹을 때까지
라면 한 상자를 다 축낼 때까지
그대 곁에서
연락 두절로 지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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