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가슴에 묻은 김칫국물/ 손택수

톰소여와허크 2010. 10. 26. 12:58

가슴에 묻은 김칫국물/ 손택수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 만에 입은

흰 와이셔츠

가슴팍에

김칫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김칫국물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인사로 알았던 모양


살다 보면 김칫국물이 다

가슴을 들여다보게 하는구나


오만하게 곧추선 머리를

푹 숙이게 하는구나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칫국물 한두 방울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 일이다


- 『나무의 수사학』 수록



* 사람은 사람 사이의 준말이기도 하다. 사람 사이 부대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이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그럼에도 사소한 다툼 끝에 냉랭해진 사이도 있고, 특별한 이유 없이 괜히 불편해지는 사이도 있다.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 불편한 관계를 참고 사는 수밖에 없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게 모질게 살 이유가 없다. 

  위 시의 화자는 아주 우연한 사건으로 이 사실을 깨우친다. 김칫국물 떨어진 자리를 보려 고개를 숙였을 뿐인데 평소 소원하게 지내던 사람이 인사로 생각하고 환하게 ‘꾸벅’ 답을 해온 것이다. 이쪽의 태도에 따라 저쪽의 태도도 이렇듯 달라지는 것을! 지금껏 마음의 문을 냉하게 닫아두고 어색한 순간을 견디고 있었구나! 머리와 목이 저절로 ‘푹’ 숙여지는 순간이다.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과 이기적이지 않은 척하는 두 부류가 있다고 했으니 결국은 다 이기적인 한 부류이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을 더없이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먼저 존중해 주는 데는 인색하지 않아나 돌아볼 일이다. 시를 읽는 아침, 자신을 위하는 사람은 동시에 남을 위하는 사람이라는 역설을 곰곰 생각한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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