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 문정희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
사방을 크게 둘러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 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네
우적우적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식어 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릴 때에도
목구멍으로 오롯이 넘어가는 쓸쓸!
손글씨로 써 보네 산이 두 개나 위로 겹쳐 있고
그 아래 구불구불 강물이 흐르는
단아한 적막강산의 구도!
길을 걸으면 마른 가지 흔들리듯 다가드는
수많은 쓸쓸을 만나네
사람들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쓸쓸을
손으로 살며서 떼어 주기도 하네
지상에 밤이 오면 그에게 술 한 잔을 권할 때도 있네
그리고 옷을 벗고 무념(無念)의 이불 속에
알몸을 넣으면
거기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나를 끌어안는 뜨거운 쓸쓸
- 『다산의 처녀』수록
* 한글의 시옷(ㅅ)은 이의 모습을 본뜬 음운이지만 산이나 집의 모양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이 겹치고 강이 이어지는 듯한 ‘쓸쓸’이란 글자체를 두고 적막강산을 생각한 것은 화자의 내면인 그러한 줄 짐작하게 한다. 실제 ㅅ 발음을 해보면 혀끝에 바람이 잠시 모였다가 새나간다. 속에 것을 끝까지 내지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고이게 하지도 못한다. 원래 있던 것이 어디론가 슬며시 빠져버리고 텅 빈 느낌, 그래서 쓸쓸하다.
화자는 쓸쓸의 옷을 입고 있다고 했지만 이 옷은 맞춤복이 아니라 생래적인 혹은 존재론적인 기성복에 가까워 보인다. 길로 나서면 같은 옷을 입은 이웃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검불 하나 뗀다고 달라질 게 뭐 있을까 싶지만 괜히 그러고 싶은 마음도 쓸쓸해서 이다. 쓸쓸한 마음끼리 서로 쓸어 주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군중 속에서 그런 척, 아닌 척 척척 잘도 지내다가, 아무 생각 없이 ‘이불 속에 알몸을 넣으면’ 비로소 자신과 한몸인 쓸쓸을 오롯이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쩔거나. 껴안고 재울 수밖에 없지 않겠나.(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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