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최북의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톰소여와허크 2010. 12. 4. 09:05



 


최북의 풍설야귀인도 (風雪夜歸人圖)/ 이동훈

겨울나무의 가지가지를 후리고 채는
사나운 산바람에
쌓인 눈은 금세 꽝꽝 얼어붙고
요행스레 바람길을 피했는지
노인과 아이의 매무새는 이상할 만치 단정하다.
주변이 아무리 을씨년스러워도
저녁거리를 들고 가는 귀갓길엔  
시시풍덩한 이야기조차 정겨울 법하다.
마뜩잖은 짓거리에 한쪽 눈을 내어 준 광기가
나무에 이는 바람으로 그려졌다면  
무풍지대의 노인과 아이는 뭔가.
그가 지키고 싶었던 게 이런 걸까.
붓끝에 닿지 않은 저편 어디에 있을 집도
가난한 자를 위한 마련이려니.

엊그제 만난 노인은
천장에 댈 방수포를 사러 왔다가
흥정해서 깎은 돈으로 고기를 끊어 간다지.
노인도, 노인을 졸래졸래 따르는 아이도
그림 속 풍경으로 돌아가고 없는데
노인의 굽은 등을 그리려
취기를 흩뜨리고
곱은 손가락에 입김을 불었을
가난한 환쟁이의 마음결이
슬몃슬몃 잡히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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