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프/ 이동훈
밤새 손발이 시리더라니
문짝을 여는데 얼음이 버석거려요.
겨울을 날 궁리로 뒷머리가 쭈뼛해요.
가스에 이어 전기도 끊어질지 모르니
석유램프가 있으면 좋겠어요.
녹슬어 가는 주전자로 램프를 만들까요.
목장갑을 풀어서 심지를 만들고
주전자 주둥이를 안으로 우그리어
석유 먹은 심지를 뽑아내면 되지 않겠어요.
성냥을 대면 발롱발롱 피어나는 꽃
눈물을 사르고 불빛이 반해도
내 몸의 절반 이상은 어둠이에요.
불불불 떠는 영혼을 위하여
성냥불을 고이 모아도
주전자 램프를 아무리 문질러도
할머니도 요정도 나올 리 없어요.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멀리 있다고
서둘러 절망을 이야기하진 않을래요.
아버지 어머니 따윈 아주 잊었어요.
이제, 얼은 가슴을 녹이려
석유를 구하러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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