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에 대해 묻다/ 박철
밥을 먹다가 아내가 물었다
굴욕에 대해 아느냐고
나는
이러저러하게 대답했다
아직 냉전 중이어서
조금 굴욕적이었다
밥을 먹다가 아내가 말했다
굴욕은 밥을 깨작깨작 먹는 것이라고
- 『불을 지펴야겠다』, 문학동네, 2009.
* ‘굴욕’은 남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한다는 뜻이고 ‘굴욕적’은 그런 느낌을 가진 상태이다. 업신여김은 ‘없이 여긴다’는 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번히 있는데 없이 취급하면 참 속상한 일이다. 굴욕적인 상황은 어디에서든지 생길 수 있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바깥일에서 기인해서 가정으로까지 이어질 때가 종종 있다. 밥벌이의 대가로 굴욕과 수치를 감수하고 집에서 꽁해 있거나 어깃장을 놓으면서 부부간의 불화를 자초할 때가 그런 경우이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아내가, 내 마음 같지 않은 남편이 서운한 데다, 자존심이 상할 말이 더하게 되면 애먼 곳에서 신경전을 벌이게 되는 꼴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존재감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그래서 상처가 더 클지도 모른다.
밥알 헤아리며 깨작깨작 먹는 양을 보고 재수 없다, 복 없다, 가난해진다는 말을 붙이곤 한다. 그래도 밥상머리를 떠나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위 시에서 화자와 아내는 밥공기 나누듯이 굴욕마저 나눌 순 없겠지만 그런 마음을 헤아려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진짜 굴욕적인 일이 있다면 상대의 굴욕을 요구하거나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