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랭귀지/ 최영철
느닷없이 내리는 부슬비 맞으며 셔틀버스 기다리는데
저만치 우산 받치고 선 외국인
자기 우산 속으로 들어오라며 손짓이다
이런 봄비쯤이야, 설레설레 괜찮다고 손 흔들었더니
요즘 비 맞을 거 못 된다고 살랑살랑 또 손짓이다
우산 속에 나란히 서서 가로수 아래 풀잎을 보고 있는데
다급하게 쫒아 들어온 체면 없는 비를 마다않고
풀잎들은 서로 자리를 내어주느라 설레설레 살랑살랑 물결친다
버스가 오고 서로 먼저 타라고 손을 내밀고
버스가 서고 서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몇 정거장 지나 다른 나라에 왔는데도 비는 내렸다
풀잎은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들고
그러지 않아도 지금 간다며 비는 미끄럼을 탔다
여기 목마른 곳 간지러운 곳 있다고 풀잎은 몸을 비틀고
안다고 다 안다고 비는 거기에 정확히 파고 들었다
문 열어달라고 댕댕댕 비는 풀잎의 심장을 두드리고
벌써 다 열어놓았다고 풀잎은 비를 받아들였다
- 『찔러본다』, (주)문학과지성사, 2010.
*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고 ‘다른 나라’ 정거장을 지난다. 직장에 다니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 우선 떠오른다.
비를 맞고 있는 화자에게 외국인이 기꺼이 우산을 받쳐준다. 서로의 말에 익숙지 않아도 눈빛과 손짓으로 한쪽은 친절을 베풀고 다른 쪽은 고마움을 표시했을 거다. 여기에 내국인과 외국인의 구별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지면에서 종종 접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실태는 크게 개선되지 않은 듯하다.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를 받고 각종 산재의 위험을 안고 있다. 폭력과 협박 등에 시달리는 모습도 여전해 보인다.
국제결혼이나 외국인 고용을 통해 다문화사회가 현실이 된 마당에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당연시한다면 이 자체가 폭력과 진배없다. 소통의 부재가 바로 폭력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생각해 보면, 폭력의 대척점에 소통이 있다고 해도 되겠다.
그 소통에 언어만큼 중요한 것이 없겠지만 보디랭귀지(body language-몸짓 언어)가 더 진정성 있게 와 닿는 건 소통을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 있어서이다. 비를 환영하는 풀잎의 마음도 그와 같을지 모르겠다.
내외(부부든, 내국인 외국인이든 아니면 남북한이든)의 소통은 서로 간의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해는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기에 말도 섞고 몸도 섞고 해야 한다. 여느 해보다 추운 겨울, 봄비를 기다려 막 섞이고 싶은 마음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