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마애불(사진 출처 http://kwkm38.blog.me/)
마애불 배꼽 / 이동훈
일자리 잃고 배꼽 맞추는 정으로 근근이 버틴다는
별로 우습지도 않은 입담만 굽다가 아직 익지 않은 이야기로
고깃점 뒤집듯 나간 게 또 배꼽 타령이었다.
인기 없기로 제법 알려진 학원강사 동창이 주워섬긴 말은
선운사 뒤편의 부처 배꼽에서 비결이 나오는 날
서울이 망한다는, 이런 술자리에선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고급 안주처럼 불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서울이 여태 성한 걸 보면 배꼽이 멀쩡하다고 해야 할지
비결이 꼭꼭 숨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슬쩍 발을 빼려는 녀석에게
네 눈엔 서울이 성한 걸로 보이냐고
고시 생활 십 년에 심장병으로 낙향한 동창이
빠른 회복을 증명하듯 대거리가 사납다.
이 배꼽 저 배꼽, 걸친 술잔이 늘수록 점점 어지러운데
전설의 끝자락을 저마다 씹어 대는 바람에
견디지 못한 배꼽이 돌출해서 비결을 내놓을 지경이었다.
몇 순배가 돌아서야 겨우 떨어져 나간 배꼽 이야기를
다시 안줏거리로 불러들인 건
애초에 배꼽 맞추는 정을 운운했던 녀석인데
세상 어디에도 비결은 없고, 부처 배꼽도 별 수 없을 거라고
젖은 목소리로 떠들어대서 술맛이 살짝 떫어졌다.
아직 술잔에 남아있는 풍문을 톡 털어 마셨더니
배꼽 있는 자리가 알맞게 찌릿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