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감나무/ 이병룡
팔순 어머니가 십여 년 전에
집 앞에 심은 감나무는 해마다 열매를 맺고 있다
경비아저씨가 그 감을 어머니 몫으로 챙겨주셨지만
맛은 별로 없었다
어머니가 심으신 나무에서 따온 감이 참 맛있어요
하며 가게에서 사온 때깔 좋은 홍시를 어머니께 내민다
그래 참 맛있구나
어머니는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한심한 놈
내가 심은 감나무는
물렁한 홍시가 아니고 단감 종자다
어머니는 나를
속 꽉 찬 단단한 단감으로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내 맛없는 거짓말을 진작에 눈치 채신
어머니의 가을에도 감나무 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다
- 『뒤셀도르프에서 만난 첼리스트』, 고요아침, 2010.
- 홍시처럼 보드랍고 무른 데다 엉성하기까지 했을 아들이 걱정되어서 일까. 어머니는 아들이 “속 꽉 찬 단단한 단감”이기를 기대했다. 금방 드러날 어설픈 거짓말로 보아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와 다르게 빈틈이 쉬 보인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선의의 거짓말에서 그 선의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어머니는 자식이 단감이든 땡감이든 이만하면 되었다고 내심 생각하시리라. 반면 아들은 어머니의 가을이 조금씩 걱정되는 눈치다.
떫은 땡감의 시절을 지나와 잘 익은 홍시! 나누어 먹을 사람이 없다면 무슨 맛을 알겠는가.(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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