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잠화 ( http://cafe.daum.net/hagro21 플랑떼 님)
옥잠화/ 윤정구
두 누님은 쪽을 찌고 시집을 갔다
(어흠어흠)
갓 쓴 아버지는 가끔 헛기침을 하셨다
(시집 갈 때까지 머리 볶는 것은 안 되고 말고!)
셋째 누님이 결혼식 전날
몰래 파마를 하고 돌아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슬아슬하다
셋째 누님은 이모들 계신 안방으로 숨고
차마 안방에까지 쫓아 들어가지 못한 아버지는
안마당에 옥잠화 은비녀를 냉동댕이치셨다
(흠 고이얀 것!
이렇게 당돌한 사람을 보았나?)
옥잠화 하얀 꽃을 보면 누님들 웃음소리 들린다
(우리니까 어리숙하게 쪽지고 시집갔지
대명천지에 누가 쪽을 지고 시집을 가겠니?)
석류나무 아래 옥잠화꽃
올해도 고운 은비녀를 받쳐 들고 있다.
- 『쥐똥나무가 좋아졌다』, (주)천년의시작, 2009.
* 비비추와 옥잠화의 구별이 쉽지 않다. 둘 다 꽃 모양이 비녀를 닮았는데 흰 빛을 띠는 옥잠화가 더 그럴싸해 보인다.
시인은 옥잠화의 비녀에 마음을 주고 있다가, 비녀로 쪽을 눌러 꽂은 누님의 머리치장이 자연스레 생각났을 것이다.
파마든 단발이든 유행은 자꾸 신식으로 가는데 쪽 찐 머리라니, 셋째 누님은 참을 수 없었나 보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결혼식 직전을 디데이로 잡고, 옛것을 고수하려는 “갓 쓴 아버지”를 상대로 누님은 극적인 반기를 든다. 누님의 전략은 꽤나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더는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을 테고, 실제 아버지도 자신의 위신과 신념을 위해 딸아이의 행복을 그르치지 않았을 것이다.
대개의 갈등이란 게 그럴 것 같다. 자기가 자기를 너무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이해의 마음 폭을 조금 넓히기만 한다면 서로 상하는 일 없이 다 잘 풀릴 거라고. 지나고 나면 슬며시 웃게 되는 일이 많을 거라고.(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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