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 정호
동강 벼랑바위 맞은 편 모래톱에서
손바닥만한 꺽지를 낚았다
물씻김 좋은 물바위에 걸터앉아 배알을 따고
부레와 쓸개 내장을 후벼내는데
억센 등비늘이 따끔! 손가락을 찌른다
멈칫, 하는 순간 꺽지는 푸득거리는 감촉만 남긴 채
미끄러지듯 내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순식간에 새파란 물속으로 사라진다
내장도 모조리 빼놓고 어디로 갔을까
깊은 물속 기웃거리다가
속내 털린 통증을 자갈 사이에 파묻으며
굵은 소나무 밑둥치 같았던 삶의 굴곡 우툴두툴 파헤치다
통점도 접고 생각마저 비우고
끝내 기진하여 물 위에 허연 배 띄우리라
용도 폐기된 기관들
나는 꺽지 내장을 강물에 내던진다
부레 쓸개 동동 떠내려간 산그림자 짙은 자리
잘 닦인 물거울이 나를 비춘다
한때는 불 같은 열정으로 타올랐던
허영으로 치장하고 때론 이웃과도 등 돌리던, 이제는
배롱나무 껍질 같은 밋밋한 마음자리
간 쓸개 다 빠져나간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 『비닐꽃』,북인, 2011.
* 낚시에 빠진 세월만큼 낚시꾼의 무용담도 늘어난다. 내장을 내놓고 뒤늦게 강으로 뛰어든 꺽지 이야기도, 잡거나 놓친 물고기의 크기를 과장하는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사건이다. 꺽지 입장에서야 안타깝고 분개할 일이지만 일상의 낚시꾼에게 일자 낚싯바늘로 세월 낚는 강호 고수의 아량을 기대할 순 없다.
그렇지만 시인은 세월 대신 시를 낚는 고수답게 내장 없는 꺽지와 산그림자가 만든 “물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응시할 줄 안다. 바윗돌을 피하고 물굽이를 지나온 꺽지처럼 인생의 우여곡절을 지나오는 동안 불안으로 간을 졸이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반대로 지나친 의욕으로 간이 부픈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이웃과도 등 돌리던” 모습이 그런 인상을 갖게 한다.
하지만 “밋밋한 마음자리”나 투명한 “속내”는 이 모든 상황을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여유가 있어야 남의 속내도 짚어 보고, 자신의 속내도 찬찬히 살피게 되는 법이다. 사람 사이, 숱한 관계에 엮여 살면서 자신의 속내도 모를 지경이면 일상을 잠시 떠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
아무렇든지 어두운 속내가 세상에 다 드러나는 일이 없어서 다행일까?(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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