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박성우
마늘밭귀에 감나무 한 그루 있다
까마득 죽은 줄 알았던 감나무
봄 지나도록 깜깜무소식이더니
여름이 되어서야 겨우
이파리 몇잎 싱겁게 올리다 그만둔다
감나무 밑동에 고들고들 말린
닭똥거름과 소똥거름을 낸다
기름기 많은 흙도 다독다독 보태고
따로 거름도 사다 부어준다
장미농사 짓는 형한테서
영양액을 통말로 얻어다 부어주기도 한다
누구는 쇠한 감나무를 베어내고
튼실한 묘목을 심으라 했고
누구는 가망 없으니 헛심 그만 빼라 조언했다
오랫동안 잎을 틔우지 못한 윗가지들은 썩어
겨울바람에 툭툭 힘없이 부러져나갔다
다시, 봄이다
마늘밭귀 감나무가 살아난다
대봉시도 단감도 먹감도 아닌
그냥저냥 따먹는 감을 매달았다던 감나무
두 해 전 늦가을에 집을 얻어 이사올 적엔
내 감나무인 줄만 알았던 추레한 감나무
허나, 먼 서울에 주인이 따로 있는 감나무
감잎이 푸릇푸릇 돋아난다
내 것이 아니어서 더 다디단 감을 매달 감나무
- 『자두나무 정류장』,(주)창비, 2011
* 지력이 모자랐는지, 병 침해가 있었는지, 그걸 감당할 원기가 없었는지 죽어 가는 감나무가 있다. 이를 안쓰럽게 보던 시인이 거름을 내고 “영양액”을 투입한 덕분인지 감나무는 기적적으로 소생하여 제 수명을 누릴 기세다.
감나무 입장에서 보자면, 초년고생 후 귀인을 만날 팔자라 하겠는데, 그 귀인은 시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망 없으니 헛심 그만 빼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은 흘려듣고 공연한 일에 열심인 사람, 경제적 셈법이나 득실을 따지는 데 숙맥이고 “닭똥거름과 소똥거름”처럼 생명을 보듬고 키우는 데 분주한 사람이 시인일 테니.
뒤늦게 감나무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주인이 나타났을 때, 그간 애쓴 보람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 아니어서” 시인은 몹시 서운했을 테지만, 자신의 손길에 닿아 푸릇푸릇 돋아난 생명, 그 자체로 이미 큰 감사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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