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채송화 / 고광헌

톰소여와허크 2012. 6. 1. 10:12

 

 

 

채송화 / 고광헌

 

고향 형님 댁 앞마당

키 작은 채송화

고등학교 시절 집에 갔을 때

구겨진 오천원짜리 쥐여주며

서울 공부 잘해야 한다던

눈 큰 형수 닮았다

 

60년대 초 어느 겨울날

한 집안으로 시집와

내리 딸만 다섯 낳고, 평생

살금살금

가만가만 사시다가

일흔살도 안돼 떠난

눈 크고 키 작은 형수

 

형수가 낳은 딸 다섯

닮았다

 

- 『시간은 무겁다』, 창비

 

* 채송화, 민들레, 제비꽃은 땅에 붙어 키를 크게 돋우지 않기에 지방에 따라 ‘앉은뱅이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각기 다른 얼굴(꽃)에, 다른 옷(잎)을 받쳐 입고 개성을 뽐내는 식물이지만 유독 채송화는 아름다운 얼굴에 비해 옷을 잘 차려입지 못한 느낌을 준다. 여름 나기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지 모르겠지만 솔잎 부풀린 것 같은 다육질의 몸이 꽤나 어색하다. 이런 생각이 편견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는 것이 마냥 미끈한 것보다 친근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화자는 자신을 챙기던, “눈 크고 키 작은 형수”의 모습에서, 피붙이에게 끌리는 감정과는 다른, 따스한 정을 느꼈을 것이다. 아들을 기다렸을 집안에서 딸만 줄줄이 내고, 더 조심스러웠을 형수의 모습이 애잔하게 와 닿기도 했을 것이다.

  세월은 가고 형수는 없지만 형수 보듯이 채송화를 보는 시간이었을까. 꽃과 어울리지 않게 가는 줄기가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그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느 꽃보다 환하게 피는 채송화, 화자의 기억 속에 각인된 채송화는 딸들에게 유전되어 다시 마당 가득 꽃 피우고 있다. 빨강, 자주, 노랑, 분홍, 흰색으로.(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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