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암사지에서 / 이동훈
연암은 요동 벌판에 가 한바탕 울어 볼 만한 터라고 했다는데 영암사지* 금당 터 돌계단은 한눈에 기다림의 장소인 줄 알겠어요. 턱을 괴고 오래오래 있자니 별날 것도 빠질 곳도 없는 풍경에 시력이 살아나요. 쌍사자 석등에서 삼층석탑까지 서로 바라보되 웬만치 떨어진 거리에 경사 따라 살짝 갸운 마음이 지붕돌 위 구름 한 장으로 떠다녀요. 가릉빈가의 날갯짓으로 햇살 부서지면 전설은 다시 깨어나죠. 새소리 부려 놓은 금당 터 돌계단에 앉아 기다림도 눈부실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화사석에 달이 들 때 무지개 계단 밟고 올 이를 위하여 세월없이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더 기다리고 싶은 거지요.
* 경남 합천군 가회면 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