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연정에서 / 이동훈
섬에 남을 건가 말 건가. 판석보로 내려가는 물살에 장화 목을 적시다가 낭창하니 듣는 빗발을 피해 팽나무 밑으로 간다. 무희의 발자국 지워지는 동대 서대 지나 소나무에 기대 더워진 이마를 짚는다. 밖으로 나갈 건가 말 건가. 취하여 사는 것도 어렵지만 깨는 건 더 두렵다. 묻혀 사는 것이 답답하지만 나가는 길도 짙디짙은 안갯속이다. 세연정* 문짝을 다 걷어 올려도 바닷바람은 도포 자락을 흔들 뿐 소줏불로 타는 속을 어쩌지 못한다. 연못 바위에 훌쩍 올라 활을 잡아도 과녁은 보이지 않고 공연히 화살대만 부러뜨려 계담에 흘려보낸다. 뭍으로 나갈 건가 말 건가. 배를 띄운들 이만한 영토가 없고 배를 저어 간들 이만한 자유가 없다지만 한 자락 스멀거리는 안개 따라 뱃머리는 자꾸 뭍으로 돌아선다.
옛사람도 배도 무희도 가락도 사라진 세연정에 이제, 안개만 살아 뭍에서 온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 뭍이든 섬이든 길 아닌 곳이 없지만 다시 길을 묻는다. 세상으로 나갈 건가 말 건가. 연 줄기를 잡은 청개구리 앞발을 놓을까 말까 궁리하는 사이 더금더금 지핀 안개가 길을 지우고 섬 속의 섬을 뽀얗게 덮는다.
*세연정(洗然亭) : 윤선도가 보길도에 지은 정원이자 정자 이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