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강으로 지는 노을

톰소여와허크 2012. 9. 4. 17:31

이재부, 강으로 지는 노을, 정은출판, 2012.

 

* 우리시 모임이 파하는 자리에서, 이재부 선생이 막걸리를 사면서 인사말을 주었는데, 가벼운 농담조로 ‘조실부모’한 처지라고 운을 떼신 게 귀에 남아 있다. 선생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군데군데서 그때 말씀이 짚여 잠시 쉬어 읽어가곤 했다.

  수필의 앞부분은 가족 이야기다. 마음속 깊이 쟁여두었던 이야기들이 동여맨 끈을 풀고 나오는데, 하나같이 아릿하고 서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어머니 무덤 앞에서 술 취한 아버지를 원망하던 아들은 어느새 아버지가 되어 지하철 상도역에서 큰아들의 마중을 받는다. “내가 아버지 아들이듯이 자식이 나를 닮는다. 아버지 기뻐하시던 기분을 이제서 짐작한다”며 유전하는 사랑 이야기를 잔잔한 음성으로 들려준다.

  어머니 자리를 대신하던 형수와의 이별도, 제 수명을 다 살지 못한 작은누이와의 이별도 선생에게는 회한이 깊다. 삶의 도처에서 불쑥 나오는 과거의 잔상을 떨치지 못한다. 괴산 청천의 돌탑을 보다가, 보길도 파돗소리를 듣다가 가족의 울음소리를 떠올린다. “부딪히며 사는 세상에 행복의 소리는 다 잊었는데 슬픔의 흔적은 왜! 가슴에 남아 기회마다 연상되는지”라며 아픔을 감추지 않는다. 아마 이런 글쓰기를 통해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두고, 이전보다 마음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아버지가, 또는 어머니가 없는 아이에게 정을 주면서 그 인연으로 군대 입영까지 따라나서고, 그곳 부대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는 선생의 수고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선생이 앞서 다녀갔던 대흥사에서, 식구와 구차한 일로 다투었던 기억도 나를 부끄럽게 한다. 선생은 대흥사 숲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물어온다. “사랑하며 살았는가?”라고.(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