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그늘과 쥐수염붓 / 안도현
국화꽃 그늘이 분(盆)마다 쌓여 있는 걸 내심 아까워하고 있었다
하루는 쥐수염으로 만든 붓으로 그늘을 쓸어 담다가
저녁 무렵 담 너머 지나가던 노인 두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한 사람이 국화꽃 그늘을 얼마를 주면 팔 수 있느냐고 물었다
또 한 사람은 붓을 팔 의향이 없냐고 흥정을 붙였다
나는 다만 백년을 쓸어 모아도 채 한 홉을 모을 수 없는 국화꽃 그늘과
쥐의 수염과 흰 토끼털을 섞어 만든 붓의 내력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 대신 구워서 말려놓은 박쥐 몇 마리와 박쥐의 똥 한 홉,
게으른 개의 귓속에만 숨어 사는 잘 마른 일곱 마리의 파리,
입동 무렵 해 뜨기 전에 채취한 뽕잎 일백이십 장, 그리고
술에 담가놓았다가 볶아 가루로 만든 깽깽이풀 뿌리를 내어놓았다
두 노인은 그것들을 한번 내려다보더니 자신들은 약재상(藥材商)이 아니라 했다
그러고는 바삭바삭 소리가 날 것은 같은 국화꽃 그늘에 귀를 대보고
쥐수염붓을 오래 만지작거리더니 가을볕처럼 총총 사라졌다
그렇게 옛적 시인들이 나를 슬그머니 찾아온 적이 있었다
- 『북항』, (주)문학동네, 2012.
* ‘국화꽃 그늘’은 혼자 보기 아까운, 국화꽃보다 더 웅숭깊은 뭔가를 담고 있다. 이를 시로, 그림으로 형상화하고픈 게 예술하는 사람의 욕심이다. 명필이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붓의 재질에 따라 그림의 완성도는 달라질 것이다. 원작이 있다면 가격을 매길 수 없을 거라는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도 서수필(鼠鬚筆)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그러지 않나.
위 시의 노인의 정체는 옛적 시인으로 귀결된다. 그러면 노인이 흥정했던 ‘국화꽃 그늘’은 시의 진경(眞境)이라 할 것이며 ‘쥐수염붓’(鼠鬚筆)은 그러한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최선의 도구로 볼 수 있다.
‘국화꽃 그늘’이나 ‘쥐수염붓’은 누가 달란다고 해서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국화꽃 그늘’은 알아보는 이에게 무한한 가치가 있지만 금세 ‘바삭바삭’ 스러지며 그늘을 걷어버릴 여지가 많다. 쥐수염붓도 쥐 수백 마리를 확보해야 한 자루 탄생한다고 하니 평범한 사람이 그런 횡재를 잡을 기회는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시의 진경을 맛보고 싶고 최소한 거기에 가까이 가고 싶은 게 시인의 욕망일 것이다. 한 편의 전설 같고 동화 같은 이 시는 쥐수염붓이 아니더라도 자기 온몸을 도구로 써서 꿈꾸던 경지에 한 발 한 발 다가서야 하는 시인의 숙명을 생각하게 한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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