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의 여자/ 최윤경
낡은 액자 속에서 웃고 있다
장미꽃을 단 모자이거나
하얀 레이스가 돋보이는 원피스이거나
두 볼이 발그레한 미소가 누워있다
파스텔 색조로 흩뿌려진 얼굴
모자를 쓴 또 다른 얼굴이
돌출되어 다가온다
르누아르는 말한다
- 그림은 영혼을 씻어주는 선물이어야 한다
한 생명과 생명에 혼을 불어넣으면서
그렇게 말했으리라
낡은 단어와 단어 사이에
나는 무엇을 남겨두었을까
詩는 마음을 닦아주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한 여인의
꽃무늬 모자가 머리에 그려진다
환하게 웃는 미소가 스쳐간다
거울을 본다
가볍게 흐린 내 가슴을 지우고 간다
완성하지 못한 글씨가 흔들린다
그녀의 미소가 환하다
- 『텅 비거나 혹은 가득 차거나』, 다시올, 2012.
* 그림과 시는 작업 수단이 다를 뿐 이미지를 창조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친근성에 기인해서 시적인 그림이 있고, 회화적인 시가 있다. 시가 그림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시가 되기도 한다.
이 시는 르누아르 그림이 모티브가 되고 있다. “장미꽃을 단 모자”나 “두 볼이 발그레한 미소”에서 보듯이 르누아르 그림이 주는 인상은 대개 밝고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다.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를 일부러 없애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 같다. 그런 느낌이 근거 없지는 않다. “그림은 영혼을 씻어주는 선물이어야 한다”는 화가의 말도 있었으니.
시인은 그림을 통해 “생명에 혼을 불어넣”는 화가의 진정성을 꿰뚫어 본 듯하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로 돌아온다. 영혼을 씻어주는 그림과 같이 자신의 시도 “마음을 닦아주는 거울”과 같은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자신 혹은 시적 대상을 얼마나 핍진하게 그려냈느냐, 또 그로부터 영혼의 위로와 치유를 얻어냈느냐는 점에서 한계를 느꼈을 법하다. 사실, 이 점은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필생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녀보다 더 그녀다운 그림 한 점, 그녀보다 더 그녀 같은 시 한 편을 기대하지만 그녀는끝내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 자체로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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