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나무 / 김기택
나뭇가지들이 갈라진다
몸통에서 올라오는 살을 찢으며 갈라진다
갈라진 자리에서 구불구불 기어 나오며 갈라진다
이글이글 불꽃 모양으로 휘어지며 갈라진다
팔다리처럼 손가락 발가락처럼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갈라져 있었다는 듯 갈라진다
태곳적부터 갈라져 있는 길을
거역할 수 없도록 제 몸에 깊이 새겨져 있는 길을
헤아릴 수도 없이 가보아서 눈 감고도 알 수 있는 길을
담담하게 걸어가듯이 갈라진다
제 몸통에서 빠져나가는 수많은 구멍들이
다 제 길이라는 듯 갈라진다
갈라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
조금 전에 갈라지고 나서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다시다시 갈라진다
갈기갈기 찢어지듯 갈라진다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쉬지 않고 갈라진다
점점 가늘어지는데도 갈라진다
점점 뒤틀리는데도 갈라진다
갈라진 힘들이 모인 한 그루 커다란 식물성 불이
둥글게 타오른다 제 몸 안에 난 수많은 불길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렬하게 갈라지고 있다
-『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사, 2012.
* 나뭇가지가 자꾸 갈라지는 것은 몸 내부에 그럴게 될 수밖에 없게끔 구조적으로 장치화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예외 없이 갈라진다는 데서 존재의 숙명이 느껴지기도 한다.
불길처럼 “맹렬하게” 갈라지는 데서 존재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보고자 하는 의지가 눈을, 듣고자 하는 의지가 귀를, 움직이고 조작하고자 하는 의지가 팔 다리를 생기게 했다는 말에 유추해 생각하면, 나뭇가지는 갈라지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일 수도 있겠다.
커다란 나무일수록 많이 갈라진다. 커다란 나무의 무수하게 갈라진 가지, 그리고 또 갈라지려는 모습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자기실현을 하려는 노력을 읽었을지 모르겠다. 몸 안의 어디선가 불길 사그라진 자리, 움찔하는 기척을 듣는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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