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歲寒)의 끝 / 신현정
아 세한의 끝이 저기로군요
하늘을 까마득히 쳐올라간 네 그루의 송백(松柏)이 그렇지 않은가요
그 아래 담 없는 집을 부는 갈필의 빠른 바람이 그렇고
거기 먹향이 은은히 감도는 것이 누가 매화라도 치고 있는 거겠지요
아무래도 나귀를 한 번 더 보내야 되겠지요
그저 헛기침 소리라도 추운 잔설의 마당에 내려서는 이때다 싶으면
냅다 들쳐 업고서는 내처 달려야 하겠지요
- 유고시집『화창한 날』, 세계사, 2010.
* 날이 추울수록 군불 같은 사랑이, 먹빛 같은 은은한 정이 그립다. 김정희 선생은 찬바람 부는 적거지에서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정을 내는 제자가 미덥고 고마워 그림 한 점을 선물로 남긴다. 그림 속 세한(歲寒)의 빈집이 온기를 잃지 않고 있다면 그건 사람 사이 오가는 정이 있어서다.
아직은 잔설이 분분한 계절, 화자는 불현듯 정을 내고 싶은 걸까. 저편 누군가의 기다림을 사러 “나귀”를 보낸다. 매화 치는 데 골몰한 정인이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 기다림은 좀 더 길어 질 수도 있으리라.
기다림 끝에 나귀는 벗을 싣고 올 것이다. 나귀가 응앙응앙 울며 나타샤를 싣고 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리운 사람의 기척이라도 느낄 것 같으면 계절은 이미 세한의 끝에 와 있을 것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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