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모서리의 기원 / 양현근

톰소여와허크 2013. 12. 3. 13:36

모서리의 기원 / 양현근

 

 

무릎을 부딪쳤다

침대 모서리에 익숙할 때도 됐는데 이 모양이라니,

나를 겨누고도 아무 흔적이 없는 모서리

내 여린 무릎만 또 며칠

푸르게 도질 것이다

 

그러게 조심 좀 하랬잖아요

아내가 내미는 또 다른 모서리

저 모서리도 평생 닳을 줄 모르지

툭 내밀고 돌아서는 모서리를 아내는 금방 잊겠지만

내게 푸른 멍이 한 겹 더 얹힌다

 

그러고 보니, 온통 모서리 천지

따지고 보면 모서리 아닌 게 없다

사는 게 모서리에 긁히다가 결국

모서리에 스며드는 일

멀리 보름달이 어느 빌딩의 모서리에

쿡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아린 내 무릎에 보름달이 파스처럼 달라붙는다

 

- 『기다림 근처』, 문학의전당, 2013.

 

 

* 세상은 “온통 모서리 천지”다. 모서리는 멋모르고 다가오는 상대에게 눈에 별이 보이게 하거나 눈물을 찔끔 흘리게 하는 날카로움을 갖고 있다. 침대 모서리, 탁자 모서리, 벽의 모서리에 한두 번 당하는 건 특별한 일도 아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모서리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해 가지만 익숙한 곳에서든 낯선 곳에서든 모서리를 아주 피해갈 수는 없다.

  사물의 모서리보다 더 날카로운 건 말의 모서리다. 입안의 칼로 상대의 허점이나 실수를 베는 말, 콤플렉스나 상처를 건드리는 말, 터무니없이 조롱하고 야유하고 비꼬는 말과 그 말을 뱉는 주체까지 모두 삶의 도처에서 만나는 모서리가 된다.

  그러면 모서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있는 모서리를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살 수는 없다. 시인은 “모서리에 스며드는 일”이 또 하나의 삶의 방편일 수 있음을 말한다. 부당한 행동이나 말에 대해선 각을 이루는 게 더 양심적인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상대의 진의가 불분명한 경우라면 모서리에 스며드는 일이 한결 여유 있는 자세처럼 보인다.

  상대의 뼈아픈 말속에도 새겨들을 만한 게 있는지 모른다.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갖는 게 스며드는 방법일 것이다. 속된 말로 엣지edge 있는 태도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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