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산수유 꽃잎처럼 / 김형경

톰소여와허크 2013. 11. 16. 04:36

 

2013년 봄(의성)

산수유 꽃잎처럼 / 김형경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 물을 많이 마셨습니다

목젖이 꾸르륵거리며 환하게 피어나고

온몸의 조직세포가 팽팽히 복어의 알을 품어

누르면 음악 소리가 나는 창자

 

물은 내 구강을 떠나 그대의 하류로 흐릅니다

그대의 사향 영묘향 퍼지는 대기 속에서

나는 온몸으로 산수유를 피우고

식도를 따라 흐르는 물방울 산수유 꽃잎처럼

그대를 만나고 돌아와 나는

정체 모를 갈증 위에서 찰랑찰랑 빛납니다

 

알고 있는지요 그대

숲길에서 목이 마르면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을 마셨다는

조상들의 넉넉한 지혜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는 이따금

소를 몰고 국경을 넘는 꿈을 꿉니다

 

삶의 어디쯤에서 사방을 둘러볼 때

내가 선 땅이 사막의 한가운데일지라도

그대 향기 스러진 모래땅에 발목을 담그고

홀로 산수유를 피워야 한다면

온몸의 물을 토해 다시 꽃으로 피기 위해

지금부터 나는 물을 많이 마셔둡니다

- 『시에는 옷걸이가 없다』, 사람풍경, 2013.

 

 

* 그대를 만나고 온 날엔 목젖이 물을 켜고 산수유를 피운다. 산수유 꽃은 꽃자루 끝에 꽃밥을 안은 낱낱의 알갱이로 되어 있으니 물방울 분자와 한 몸 되어 구석구석 잘도 다니며 노란 망울 피우겠다. 노랑은 -시인은 정작 언급하지 않았지만- 밝게 환호하는 느낌도 있지만 불안과 우울의 그림자도 있다.

  “그대의 사향”이 한때 이성이나 사랑에 이끌리는 마음이었다면, “그대 향기 스러진 모래땅”은 사랑을 보내고 혼자 남은 이가 견뎌야 할 현실일 수도 있겠다.

  대개 원하는 것은 한 발짝 일찍 떠났거나 한 마장 뒤로 물러나 손에 잡혀 주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삶은 갈증의 연속이다.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을 예비하는 대신 물을 많이 마셔두거나, 산수유 노랗게 피고 지는 것을 예사로 지켜보거나, 그렇게 그렇게 한 시절을 건너야 할 것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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