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력벽 耐力壁 / 윤성학
실평수 17.15평의 생에
기둥이 하나 서 있다
기둥은 안으로 들어와서 벽이 되어 서 있다
내 안으로 들어와 벽이 된 것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삶의 전용면적이 넓어질 수 있었을 것을
공연히 평수만 차지하고 있다 이 벽
이마로 쿵쿵 두드려본다
내 것이 아니면서 버리지 못했던 그리움들
잡아두려 했으나 나를 떠난 눈물들
일상의 문장 안에 자꾸 늘어만 가는 괄호들
이 자들을 밖으로 다 들어낼 수 있다면
그런데 당신은 어쩌자고
이것이 여태 내가 걸어온
내력이라 말하는가
-『쌍칼이라 불러다오』, 문학동네, 2013.
* 내력벽은 ‘건물 무게를 지탱하도록 설계된 벽’이니 “기둥이 안으로 들어와서 벽이 되어 서 있”는 것과 같다. 내력벽의 두께가, 넓지 않은 평수에는 눈에 거슬리기도 할 것인데 그래서 “밖으로 다 들어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할 것인데 이미 내력벽(耐力壁)은 싫든 좋든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내력(來歷)을 이루고 실재(實在)로 있다.
자의식의 공고한 벽을 쌓은 내력벽을 이제 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버리지 못했던 그리움들”, “나를 떠난 눈물들”로 형성된 내력은 개인의 역사이면서 상처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남과 구별되는 것도 저마다의 이런 내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안에 오래 들어앉아 있었던 것, 충분히 앓았던 것들을 괄호로 부연설명하며 쌓아갈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내보낼 궁리를 해야 한다. 그 고민이 깊은 것도 당신의 내력일 것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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