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정 / 고영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님 댁으로 거처를 옮긴 어머니는
석달 만에 고향집에 들어서자마자 통곡을 하셨다
안방에 들어가더니
찬 방바닥을 만지며
꺼이꺼이 우셨다
가만히 문을 닫아드렸다
모두들 일부러 다른 곳을 보며
한동안 안마당에 서 있었다
방에 들어가려 하자
손사래를 치며
더 우시게 내버려두라고 했다
아직 일이 다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굶주렸던 집이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달게 범하고 있었다
조금씩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어머니가 발그레한 얼굴로
안방에서 나오셨다
- 『사슴공원에서』, 창비, 2012,
* “부디 월하노인에게 하소연하여/ 다음 생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 나 죽고 그대만이 천리 먼 곳에 살아남아/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那將月老訟冥司 來世夫妻易地爲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 )”. 김정희 선생이 유배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전해 듣고 쓴 애도시다. 평생의 반려를 잃은 실의와 슬픔은 자신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을 거라며 절절한 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위 시의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뒤, 고향집에 와서야 통곡을 한다. 붓으로 통곡하는 김정희나, 실제 통곡하는 어머니나 그 마음은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고향집은 가장 마음이 편한 장소이며, 남편의 자취가 오롯하게 배어 있는 공간이니 눌러놓았던 울음이 절로 나왔을 것이다. 그 울음소리를 아직 세상 인연을 정리하지 못한 아버지의 영혼인 양 “굶주렸던 집”이 달게 받는단다. 다시 합방이라도 하신 걸까. “발그레한 얼굴 ”이 된 어머니는 생기를 얻어서, 슬픔은 슬픔대로 남겨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설 것이다.
제목으로 뽑은 ‘통정’은 남녀가 서로 정을 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서로 간에 자기의사를 표현한다는 뜻도 있다. 정을 내던 상대가 아주 없는 사람이 될 때, 세상은 얼마나 삭막해질 건가. 만가도 짓고, 초혼도 하고, 곡도 하면서 자기를 표현하는 마음이 있어 망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위로도 되는 것 같다. 또한 남의 울음을 받아 적고, 대신 울어주는 게 시인의 일인 줄도 알겠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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