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봄 / 강경호

톰소여와허크 2014. 3. 1. 14:03

 

봄 / 강경호

 

너릿재 옛길에

누군가 베어 버린 벚나무 가지

겨우내 참았던 말을 하려다 깜짝 놀란

껍질 벗겨진 나무의 상처가 욱신거린다

 

가지들 단정하게 잘라

화병 물 속에 꽂으니

잠자리 날개처럼 보드라운

하얀 말씀들이 피어올라

한 이렛동안 바르르 떨며

초췌한 표정을 짓더니

이번엔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지그시 눈을 감고 제 살을 찢어

연두빛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결국 제 푸른 말씀들 걷어들일

상처난 벚나무 가지가

살아보겠다고

악다구니로 몸부림치는 것이다

 

- 『휘파람을 부는 개』, 시와사람, 2009.

 

*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고도 하고, 삶이 죽음을 옆에 끼고 있다가 결국 한통속이 될 것이라고도 한다. 길게 보면, 삶은 어둠(죽음)이 잠깐 꾸는 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명을 가진 존재는 사는 동안, 생을 최대한 실현하면서 사는 것처럼 살아 있고자 하는 마음을 낸다. 이는 목숨 가진 자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제각각의 생의 조건이 더러 이 본능을 거스르고 생목숨을 끊게도 하니 비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밀린 공과금과 집세를 내고 자존을 지키고자 죽음을 선택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죄송하다는 말 대신, 참 나쁜 세상이라고 왜 적지 못했을까.

  이미 뿌리 잘린 벚나무 가지도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시인은 말한다. “연두빛 노래”나 “푸른 말씀”은 봄이 와서 저절로 듣는 게 아니라, 생명을 위하고 생명을 돕는 마음들이 작용해서 이다. 잘린 가지에서도 기적처럼 뿌리가 내리는 그런 봄을 기대해 본다.(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정 / 고영민  (0) 2014.03.19
내력벽 耐力壁 / 윤성학  (0) 2014.03.12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 / 허만하  (0) 2014.02.21
자화상 / 이생진  (0) 2014.02.12
모닥불 옆에서 / 강경우  (0) 2014.02.10